국방,무역,구호 전방위 기능…서해 대표 군사유적
고종때 보다 못한 가치평가, 최근에야 국가문화재
사자바위,바이든 닮은 바위섬 울돌목급 거센 물살
세곡선,어선,외국선박 태안 피난 보호기능도 수행
태안군,일제파괴·붕괴지·관아복원,역사교육장추진
[헤럴드경제, 태안=함영훈 기자] 충남 유일의 수군방어영이자, 각국 어선·수송선의 보호기지, 조운선·세곡선의 호위, 경호 기지인 태안 안흥진성이 국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60호로 승격했다. 지금까지는 지방문화재였다.
아울러 안성진성의 축조시기가 최근 까지 알려진 17세기 효종 때가 아니라, 16세기 선조때라는 사실이 각자석 음각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두개의 전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첫번째 전란인 임진왜란 전에 이미 축성된 것이다.
이번 승격을 계기로, 태안군(군수 가세로)은 군 당국과 협력해 일제가 간척사업을 이유로 무단으로 파괴한 태국사-남북 사이 구역 복원, 인근에 흩어진 성돌의 수집과 제 위치 환원, 관아 및 시설들의 복원 및 중건, 군사지역내 붕괴 위기에 처한 동문 등의 복원, 전통친화적 모습으로 안흥진성내 마을의 리모델링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수군관련 유적이 남해안에만 집중됐으나,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서해 한복판에서 국방,무역 안전, 국세 수송 엄호, 피란선 구호, 경호 등 다목적 기능을 수행하던 안흥진성이 앞으로 군사유적문화의 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
7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일 국가문화재로 승격한 태안 안흥진성은 전체 길이 약 1714m의 포곡식 산성(包谷式 山城)으로 충청도 태안지역에 분포해 있는 수군진성(水軍鎭城) 중 가장 큰 규모다.
각자석을 통해 성을 처음 쌓은 시기(1583년, 선조 11년)를 추정할 수 있으며, 체성 상부의 여장이 남아 있어 성곽의 축조와 변천을 파악할 수 있다. 각자석(刻字石)은 축성과 관련된 사항의 글을 새겨놓은 성돌이다.
일반적으로 기본 성벽에다 필요에 따라 추가로 쌓는데, 여장(女墻)은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덧쌓은 구조물이고, 체성은 바닥에서부터 여장 아래까지의 성벽을 말한다.
태안 안흥진성’은 서해안에 자리한 입지적 특성상 조운로의 주요 거점을 담당하는 장소이자 보장처인 한양과 강화도의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축성됐다. 보장처는 경기, 인천 지역의 서울을 위호하면서 전쟁 시 임금이나 실록을 옮겨가 기거, 보관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 역할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1866년(고종 3년)에는 안흥방어영(종2품 방어사 군영)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18세기 후반에는 충청수영 행영(行營)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왔다.
태안 안흥진성은 조선왕조실록, 대동지지, 비변사등록 등 문헌기록을 통해 축성의 연도·배경·완공시기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서해안의 관방유적(군사목적의 시설 유적)으로, 전국의 통제영·방어영·수영·수군진성들 가운데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해 수군진성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문화재청은 충청남도, 태안군과 협력해 태안 안흥진성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