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조선조 사설 유학교육기관인 서원의 땅 밑에서 보물급 고려 불교 유물이 대거 발굴됐다. 이는 불교 사찰 터 위에 서원을 지은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조선 중기 숭유억불(崇儒抑佛,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함)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불교 유물 중 일부는 고려 금속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화려한 자태를 지녀 ‘보물급’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서울 도봉동 소재 도봉서원터에서 금동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을 비롯한 불교 용구 유물 77점이 서울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발굴했다고 21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날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출토 유물을 처음 언론에 공개했다. 출토 불교 용구는 금동으로 만든 금강저와 금강령 외에 청동제 뚜껑항아리(유개호 有蓋壺)와 뚜껑합(유개합有蓋盒), 현향로(懸香爐)와 부형대향로(釜形大香爐), 수각향로(獸脚香爐) 등 다양한 형태의 향로, 세(洗, 세숫대야형 용구), 향완(香埦, 향을 피우는 그릇), 대부완(臺附埦, 굽 달린 사발), 발우(鉢盂), 대접, 숟가락 등 다양한 종류가 포함됐다.
이 중 금강령은 종 모양으로 된 불교 용구로 이번에 출토된 것은 오대명왕상과 사천왕상이 함께 배치된 문양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형태는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이 금강령은 그동안의 금강령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수작으로 ‘보물급’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 발굴조사단은 “도봉서원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이 지역에서 불교가 매우 번성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화려하고 뛰어났던 고려 시대 금속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문화재청에서 발굴조사를 담당하는 한 전문가는 “추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제작년도가 12세기쯤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이번에 출토된 불교 용구는 건물지 기단을 파서 묻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도봉서원 건축 이전에 불교 사찰인 영국사 건물이 조성될 당시 제의의 일환으로 기단부에 일부러 묻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출토 유물의 제작년도가 확인될 경우 도봉서원 이전에 존재했던 영국사의 창건연대도 추정가능하다는 해석이다.
도봉서원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정치가 정암 조광조를 추존하기 위해 1573년 옛 영국사(寧國寺) 터에 창건됐다고 율곡 이이의 ‘율곡전서’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 여러 문헌에서 기록된 것이다. 도봉서원은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고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월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260년간 유지됐다. 1903년 지방 유림이 제단을 복원하고 1970년 사우(祠宇, 선조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 둔 곳)까지 복원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서울시기념물 제 28호로 지정된 이 도봉서원터는 도봉구청이 수립한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2012년 5월부터 9월까지 발굴조사를 시행했으며,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도봉서원이 영국사의 일부 건물과 시설을 활용해 축조된 것임을 확인했다. 불교 용구도 당시 출토된 것으로 그 동안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이번에 공개됐다.
문화재청 한 관계자는 “조선의 서원터에서 고려의 불교 유물이 대거 출토된 예는 처음”이라며 “서원을 절터 위에 지었다는 사실은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