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도 실적관리”…‘하비맥싱’으로 드러난 ‘불안’

[챗GPT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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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독일 브레멘에 사는 바오 레(18)의 하루는 취미로 빼곡하다. 폴댄스를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한 뒤 볼더링까지 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를 연주하고 디제잉도 즐긴다. 바느질과 코바늘 뜨기, 그림, 페인팅, 네일아트에 체스와 스도쿠까지 한다. 틈틈이 책도 읽고 취미 삼아 연구도 한다.

레는 웬만한 활동은 숫자로 남긴다. 달리기를 하면 운동 기록 앱 스트라바에 결과를 저장한다. 한 번에 취미 세 가지를 우선순위로 정해 매일 연습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음 세 가지로 넘어가는 식이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레처럼 여러 취미를 극단적으로 병행하는 젊은층이 늘면서 인터넷에서 이런 현상을 ‘하비맥싱(hobbymaxxing)’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정작 레 본인은 이런 생활이 편치만은 않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계속하게 되지만, 사실 편안하지는 않다”며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하비맥싱은 원래 일과 온라인 세계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는 순수한 욕구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취미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이제는 여가라기보다 ‘추가로 떠맡은 일’에 가까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볼더링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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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현상이 처음은 아니다.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국가적 경제 위기나 실존적 불안이 커질 때마다 비슷한 흐름이 반복돼 왔다. 취미가 단순히 무료함을 달래는 수단을 넘어, 깊은 불안과 동요를 다스리는 역할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취미에도 적정선이 있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몰입하는 순간 취미는 노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이클 인즐리히트 토론토대 심리학 교수는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이 커질수록 의미도 함께 커지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의미를 덜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작가 지아 톨렌티노는 인터넷과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배경이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압박한다고 짚었다. 그는 “대부분의 즐거움은 결국 함정이 되고, 외부에서 오는 요구는 끝없이 커진다”며 “상황이 나빠질수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최적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123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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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최적화 압박을 부채질하는 건 각종 기록 앱이다. 본 영화를 기록하는 레터박스드, 읽은 책을 관리하는 굿리즈, 플레이한 게임을 저장하는 백로그드, 다녀온 식당을 남기는 벨리 등 취미를 수치화하는 앱은 이미 넘쳐난다. 인즐리히트 교수는 “무언가에 지표가 붙는 순간, 그 지표가 사실 아무 의미도 없거나 실체가 없더라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걸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평가 수단이 시간이 지날수록 여가에서 얻는 즐거움 자체를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인즐리히트 교수는 “결국 취미가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고 말했다. 취미에 숫자를 매기거나 SNS·온라인에 활동을 공개하는 순간 스스로 의무를 지우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성과마저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뉴욕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아든 윰(23)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그는 학창시절 강의계획표가 있던 때가 그리워서 아예 자신의 취미 일정표를 만들었다. “책 한 권, 챕터 하나를 읽을 때마다 뭔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TV를 한 시간 보고 나면 생산적인 일을 하나도 안 했다는 죄책감이 든다.”

윰에게 취미는 하나의 ‘도전 과제’다. 완료하면 좋아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스파를 이용하고, 집을 꾸미거나 친구들과 춤추러 가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준다. 그는 직접 짠 6주짜리 취미 계획표를 두고 “편안하다고 느끼진 않아요. 하지만 확실히 동기부여는 돼요”라고 말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