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에 대한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2차 개정 상법이 10일 시행됐다. 업계에서는 주주 실익이 적은 반면 혼란은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제도 변화가 본격적으로 부딪히는 지점은 내년 정기주주총회다. 상장사들은 그 전에 선임할 이사 수를 줄여놓는 데 대응의 초점을 맞추고 있고,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 측은 바뀐 제도에 호응해 이사 후보를 최대한 많이 추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주주제안 단계부터 충돌이 예상된다.
※잠깐, 분리선출·집중투표제가 뭐길래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다른 이사와 별도 안건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등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최대주주가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서는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가 표를 결집할 경우 최대주주의 의중과 다른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도 커진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2명 이상을 한꺼번에 선임할 때 주주에게 보유 주식 수에 선임 이사 수를 곱한 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모든 의결권이 행사된다고 가정하면 이사 3명을 뽑을 때는 25%를 초과하는 지분으로 1석을 확보할 수 있다. 선임하는 이사 수가 줄어들수록 소수주주가 집중투표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문턱이 높아지는 구조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회사들이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은 사전에 선임할 이사 숫자를 줄이는 일이다. 이사 정원이 작아질수록 집중투표로 주주 측 후보가 진입할 여지도 함께 좁아지기 때문이다.
주주 측에서는 이를 두고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도입된 제도를 회사와 대주주가 이사 수와 임기 조정으로 무력화하려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주주제안에서 이사 후보를 몇 명 올릴 것이냐가 내년 주총의 첫 번째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지점에서 상장사는 정관에 이사 수 상한을 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로 크게 갈린다. 상한 규정이 없는 회사들은 후보 수를 제한할 근거가 없어 실무적인 어려움에 곧바로 노출된다.
실제 대응은 이미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500대 기업 중 2025년과 2026년 비교가 가능한 상장사 332곳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말 기준 등기임원은 2328명으로 1년 전 2374명보다 46명(1.9%) 줄었다. 독립이사는 1256명에서 1258명으로 2명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전체 등기임원 대비 비중은 52.9%에서 54.0%로 1.1%포인트 높아졌다.
현장에서 더 큰 혼란은 두 제도가 동시에 시행되면서 생긴 해석 공백이다. 집중투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함께 선임할 때 작동하는데, 분리선출 감사위원이 2명으로 늘면서 이들을 동시에 선임할 경우 집중투표를 적용해야 하는지가 새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분리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늘리면 집중투표 적용 범위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 회사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설계하면 대응이 쉬워지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하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다. 분리선출 대상이 2명 이상으로 늘어난 만큼 그 경우에도 집중투표가 적용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대 방향의 불확실성도 함께 남아 있다.
요건 간 충돌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사 수 제한과 독립이사 수, 감사위원 수, 재무 전문가 요건을 동시에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이미 선임된 이사를 무효화하고 다시 선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 선임 이후 상당 기간 법적 분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의 유권해석도 한계가 뚜렷하다. 법적 명확성이 확보되지 않아 법원이 달리 판단할 수 있는 쟁점에 섣불리 해석을 내놓았다가 이후 판결이 엇갈리면 혼란이 오히려 커진다. 정부 입법이 아닌 의원 입법으로 만들어진 법안이라 제도 간 상호 영향에 대한 사전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해석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제도 자체의 특수성도 상장사들이 반복해 지적하는 대목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해외 입법례를 찾기 어려운 제도이고, 분리선출과 동시에 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집중투표는 미국이 정관에 규정한 경우에만 시행하는 옵트인(opt-in), 일본이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으로 기업 자율에 맡기고 있고 영국·프랑스·독일은 도입하지 않았다. 두 제도를 동시에 강제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개정으로 주주 실익이 어느정도로 나타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 상법 개정은) 주주가 원하는 감사위원과 이사의 선임 확률을 높이거나 인원수를 늘리는 효과는 있지만, 그 자체로 회사의 특정한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주주가 즉각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춘 상장협 본부장은 “선임할 이사 숫자의 범위를 사전에 줄여놓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두고 회사들이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정관에 이사 수를 제한해놓지 않은 회사들은 다수의 이사 선임 요구에 따라 실무적인 어려움에 바로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시행 전부터 지적됐던 부분들이 어떻게 현실화될 것인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선임 이후에도 법적 분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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