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매물 94% 증가, 중소형에 수요 몰려
대단지 입주에도 전세가 5.02% 상승
59~84㎡ “없어서 못 팔아”, 대형은 부진
갈아타기 수요 지속, 입주장 효과 ‘실종’
“부동산 시장은 항상 급한 사람이 지는 법입니다. 작은 평수는 수요가 워낙 많아 가격이 안 떨어지고, 큰 평수만 입주장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서울 서초구 반포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올해 서울 서초구에서 5000가구 넘는 신축 아파트가 잇달아 입주를 시작했지만 ‘입주장 효과’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통상 대단지 입주가 시작되면 집주인들이 잔금 마련 등을 위해 전세 매물을 내놓으면서 전셋값이 내려가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반포동·방배동 일대는 중소형 평형을 중심으로 임차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면서 가격이 꺾이지 않고 있다.
8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날 서초구 아파트 전세 매물은 6908건으로 6개월 전인 3월 7일 3555건에서 94.3% 증가했다. 올 하반기 반포동 ‘래미안트리니원(2091가구)’, 방배동 ‘디에이치방배(3064가구)’ 등 대단지 입주가 이어진 영향이다.
반포동 매물은 지난 6월 하루 새 100건 이상 증가하는 날이 반복되며 5월 말에는 3500건을 넘기기도 했다. 방배동 전세 매물도 이달 7일 2074건까지 늘었다.
매물 추이만 보면 전셋값이 꺾여야하지만 실제 현장의 모습은 달랐다. 일단 온라인에서 집계되는 매물과 실제 계약이 가능한 물량 사이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게 인근 중개인의 설명이다.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이 동네는 앱에 올라온 매물을 그대로 보면 안된다”며 “광고 효과를 위해 여러 매체에 중복으로 올리다 보니 실제 매물이 2개여도 200개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대규모 신축 물량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포동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장에서는 가격이 떨어지는 게 정상이지만, 래미안트리니원 같은 경우 조합원 중 실입주를 희망하는 50~60대가 많다”며 “투자 목적의 수요가 많은 단지가 아니다보니, 전세 물건이 나오지 않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어 “세화고 등 학군지에 위치했다 보니 학군 배정 시점에 급히 들어오려는 임차 수요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인근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도 “서초구는 6개월에서 길면 1년 전까지도 미리 예약을 해 두고 대기하는 손님이 많다”며 “20~30평대는 갈아타기를 통해 이곳으로 넘어오려는 수요가 넘치다 보니 입주장 물량이 풀리더라도 항상 부족하다”고 귀띔했다. D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국민평형 전세는 없어서 못 파는 상황”라며 공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초구 아파트 평균전세가격은 지난 1월 약 11억2491만원에서 7월 약 11억6175만원까지 꾸준히 늘었다. 전세가격지수도 1월 96.74에서 7월 100.34까지 올랐다. 8월 들어 소폭 하락세를 보였지만 올해 누적 상승률은 여전히 5.02%에 달했다.
전세 수요가 59~84㎡(전용면적) 등 중소형 평수에 쏠리다 보니 대형평수의 전세가격은 급락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전셋값을 아무리 낮춰도 물건이 나가지 않는 것이다.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래미안트리니원 182㎡은 현재 35억원에 나온 매물도 나가지 않고 있다”며 “호가가 42억~43억원까지 나왔던 평형”이라 말했다.
한편 시장에선 고가 주택 및 비거주 1주택자를 겨냥한 8·3 세제 개편안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집주인들의 ‘눈치싸움’이 이어질 거란 예측이 나온다. 본래 전세를 주려던 집주인들도 실입주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이다. B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 때문에 입주해야 하나 갈등하는 이도 있고, 정책이 확정되는 내년까지 상황을 보기 위해 단기 임대를 놓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서울에서 ‘입주장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울 거라고 봤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랩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실거주 의무가 강화돼 청약 시장에서 전세를 놓으려는 가수요, 즉 ‘임차 공급’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0·15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 일부 지역을 토허구역으로 묶고 2년 실거주 의무를 부과했다.
윤 랩장은 “공급 물량이 아무리 많다해도 과거처럼 입주장이 형성되긴 어렵다”며 “전월세 수요가 적은 지역이라면 드물게 나타날 수 있지만, 서초구는 원래도 임차 수요가 풍부한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윤승현·홍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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