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제품 팔고 못 받은 돈
4사 상반기 총액 19조7260억원
영업이익(14조7906억원) 웃돌아
작년 연말(8조1271억원)보다 크게 늘어
최고가격제 손실 보상은 아직 오리무중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정유사들이 사업 영위를 위해 쌓는 운전자본의 규모가 작년 말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 전쟁으로 정유사가 사들이는 원유 값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지만 정부 규제로 이를 석유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운전자본은 ▷SK에너지 3조5361억원 ▷HD현대오일뱅크 4조400억원 ▷GS칼텍스 9조8264억원 ▷에쓰오일 2조3233억원이다.
정유 4사의 올해 상반기 운전자금 총액은 19조7260억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영업이익 총액인 14조7906억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동시에 중동 전쟁 전인 작년 연말(8조1271억원) 대비 약 2.4배 늘어난 수준이다. 기업별로 보면 HD현대오일뱅크는 2.6배, SK에너비는 2.5배, GS칼텍스는 1.6배가량 늘었다. 에쓰오일의 경우 최대주주이자 원유 공급사인 아람코가 원유 결제 기한을 연장해 예외적으로 운전자본이 마이너스 8100억원이었으나 올해는 역전됐다.
정유사의 운전자본이란, 정유공장을 계속 돌리고 석유제품을 팔기 위해 일상적으로 묶어둬야 하는 돈을 가리킨다. 통상 재고자산에 매출채권을 더한 뒤 매입채무를 제해서 계산하는데, 재고가 늘거나 아직 금전으로 회수되지 못해 이른바 ‘외상’으로 인식되는 매출채권이 늘어날 경우 증가하게 돼 과도하게 증가시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게 되면 비효율적인 경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경고등으로도 해석된다. 표면적으로는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더라도 이를 신사업 투자 등에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 부담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다. 비싼 가격에 원유를 사들였지만,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정부가 석유 제품 상한선을 정하는 ‘최고가격제’를 도입하면서 이를 판매가에 반영하지 못하면서다. 올해 초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유가 급등기에는 손실 발생 시점과 실제 보상 시점 사이의 시차가 운전자금 수요 증가와 실적 및 현금흐름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지난 3월 이후 정유사들이 가격을 낮춰 팔면서 입은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손실 규모를 산정한 기준에 대한 업계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선 최고가격제로 인한 손실이 상반기에 이미 4조원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손실보상 예산으로 4조원을 편성했는데, 하반기까지 최고가격제가 이어질 경우 역부족일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 변동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각 기업들이 저마다 신사업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손실 보상 규모도 불투명한 현 상황에선 신사업에도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k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