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944㎜·통영 765.7㎜ 기록…경남 평균 223.9㎜ ‘물바다’
옥포 산사태 아파트 토사 덮쳐 1명 사망…274세대 498명 대피
국가소방동원령 속 인력 569명 투입…경남도, 전 행정력 집중
[헤럴드경제(거제·통영)=황상욱 기자] 사흘간 최고 944㎜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거제와 통영을 비롯한 경남 남해안 일대가 거대한 수마의 상흔으로 신음하고 있다. 산비탈 절개지에서 쏟아져 내린 붉은 토사는 아파트와 민가를 집어삼켰고, 하천 범람으로 도심 상권과 여객터미널은 흙탕물에 잠겼다.
소방당국이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인근 시·도 소방력까지 긴급 결집한 가운데 민·관·군은 진흙투성이가 된 채 배수와 잔해 제거 등 응급복구에 비지땀을 쏟고 있다.
▶굉음과 함께 무너진 절개지…산사태 피해 현장=18일 오전 경남 거제시 옥포동 아파트 1단지 앞. 밤새 퍼부은 폭우가 휩쓸고 간 아파트 뒤편 야산은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길게 찢겨 있었다. 산비탈 절개지에서 쏟아져 내린 수백 톤의 토사와 꺾인 소나무들은 아파트 진입로를 가로막았고, 1층 창문과 베란다는 밀려든 흙더미에 파묻혀 처참했던 순간을 실감하게했다.
이곳은 전날 새벽 4시 40분께 야산에서 무너져 내린 토사가 인근 아파트 1층 내부로 들이닥치며 주민이 매몰된 현장이다. 긴급 출동한 구조대가 흙더미를 파헤쳐 구조에 나섰으나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현장에서 구조와 배수를 지휘하던 거제소방서 윤성원 소방경(구조구급담당)은 지친 기색 속에서도 현장을 지켰다. 윤 소방경은 “어제 산사태로 아파트에 매몰자가 발생하며 상황이 극도로 긴박했다”며 “국가소방동원령이 내려진 이후 쉴 새 없이 구조와 배수 신고가 빗발쳤고, 전 대원이 24시간 교대로 눈을 붙여가며 현장을 사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명구조는 일단락됐지만 옥포동과 고현동 일대 상가 지하실 등 침수 지역이 워낙 넓어 배수 작업 완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옥포동 상가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쓸려온 토사가 도로를 뒤덮었고 아스팔트가 곳곳마다 깨져 나갔다. 상인들은 1층 점포 안으로 밀고 들어온 흙탕물을 쓰레받기와 양동이로 퍼내느라 분주했다. 옥포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0) 씨는 “새벽에 나와 보니 이미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며 “밀려드는 물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고 울먹였다. 또 다른 식당 업주 정모(54) 씨도 “식자재 창고에 쌓아둔 재료가 전부 젖어 건질 게 하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제 최대 상권인 고현동과 장평동 일대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 고현천이 범람하며 시외버스터미널에 주차된 버스들은 바퀴가 절반 이상 물에 잠겼다. 고현동의 한 주민은 “수십 년을 살면서 대형 태풍 때도 하천이 넘친 적은 없었는데, 비가 쏟아진 지 30분도 안 돼 허벅지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전했다.
통영시 역시 도심과 어촌 마을 곳곳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인평동의 한 단독주택은 뒤편 산비탈이 무너져 기초가 드러나며 집 전체가 20도가량 기울어 거주자가 긴급 대피했다. 북신전통시장과 서호전통시장 등 상가와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겼고, 국가유산인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은 쓰러진 수목이 건물을 덮쳐 관람객 입장이 전면 제한됐다.
▶거제 944㎜·통영 765㎜…경남도내 498명 대피=경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이날 오전 6시 30분까지 도내 평균 누적 강수량은 223.9㎜를 기록했다. 지역별로는 거제 664.8㎜(다우 지점 944.0㎜), 통영 541.5㎜(다우 지점 765.7㎜), 고성 376.2㎜(학림 496.0㎜), 사천 321.9㎜, 남해 319.8㎜, 창원 218.3㎜ 순으로 남해안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가 집중됐다.
인명피해는 사망 1명(거제), 경상 2명(거제), 중상 1명(통영) 등 총 4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산사태와 침수 위험으로 거제 250세대 460명, 통영 24세대 38명 등 도내 274세대 498명의 주민이 마을회관과 경로당 등으로 긴급 대피했다. 이 가운데 129세대 253명이 귀가했으나 145세대 245명은 여전히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도내 공공 및 사유시설 피해는 총 124건에 달한다. 거제 국도 14호선 사면 유실과 통영 국도 14호선 침수 등 도로 피해 12건, 거제 13건·통영 8건 등 하천 호안 유실 21건, 상·하수도 파손 8건(거제 거제면·둔덕면·장승포동, 통영 한산면 등 4790여 세대 단수 피해), 산사태 5건, 국가유산 피해 5건(통영 김상옥 생가, 구 대흥여관 침수 등)이 발생했다.
정전 피해도 잇따라 거제 1656세대, 통영 768세대 등 총 2665세대의 전력 공급이 끊겼다. 호우 당시 거제·사천 등 도로 9곳, 하천변 산책로 48곳, 세월교 141곳, 하상도로 18곳 등 도내 240개소의 교통이 전면 통제됐다.
▶장비·인력 총동원…경남도 응급복구 총력=비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경남도와 각 지자체, 소방당국은 전 행정력을 집중해 거제·통영시 등에서 응급복구에 돌입했다.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경남 소방력 487명(장비 93대)과 부산·대구·경북·창원 등 타 시·도 지원 인력 82명(장비 28대)을 포함해 총 569명의 인력과 120대의 장비를 주요 피해 현장에 전격 투입했다. 이날부터 군 장병 약 200명도 거제·통영 피해지역 복구에 투입됐다. 소방당국은 위험지역 인명구조 107건(거제 90건, 통영 17건)을 신속히 완료한 데 이어, 옥포동과 고현동 도심 상가 지하실 등 231개소에서 대용량 동력 소방 펌프를 가동해 대대적인 배수 작업을 벌였다.
경남도와 각 시·군은 인력 359명과 굴착기 37대, 덤프트럭 44대 등 중장비를 투입해 도로를 뒤덮은 토사를 치우고 임시 통행로를 확보했다. 아울러 도내 산사태 위험지역 650개소와 해안가 저지대 48개소를 대상으로 긴급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 행정안전부도 호우피해 응급복구를 위해 경남에 특별교부세 20억원을 지원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이날 오전 집중호우 관련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하고, 거제·통영 등 남해안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를 계기로 기존 재난 대응체계를 전면 재점검했다. 이어 사전 조기대책부터 응급대응, 피해복구까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ook96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