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핀오프 ‘파쇄’ 읽은 후 상영…이색 시사회

‘조각’과 ‘류’ 사이 구멍 난 서사 갈증 풀어

“‘책 읽는 나’에서 지적만족감 챙길 수 있어”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월드타워에서 26일 토요일 오후 3시께 시작된 ‘파과몰입 상영회’ 현장. 153명의 관객이 함께 영화 ‘파과’ 원작 소설의 스핀오프 ‘파쇄’를 함께 읽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이민경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월드타워에서 26일 토요일 오후 3시께 시작된 ‘파과몰입 상영회’ 현장. 153명의 관객이 함께 영화 ‘파과’ 원작 소설의 스핀오프 ‘파쇄’를 함께 읽는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이민경 기자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레전드 킬러 ‘조각’. 신성 방역의 대모님. ‘사람을 죽이는 게 과연 실력이 뛰어나다고 칭송받을 일인가’ 싶은 이성적인 생각이 앞선다면 그녀에게 붙은 수식어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를 좀먹는 악인들을 방역하는 일이라는 의의에 동참한다면 이젠 그녀의 실력에 대한 의심이 시작된다. 60대 중반 여성 노인이 어떻게 현역 킬러로 활동하며 40여 년 동안 ‘레전드’라는 왕관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가 하는지 말이다.

민규동 감독, 이혜영·김성철 주연의 영화 ‘파과’가 오는 30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지난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월드타워점에서 이색적인 시사회가 열렸다. ‘파과’의 배급사 NEW(뉴)는 이날 원작 소설 저자 구병모 작가의 스핀오프 소설 ‘파쇄’를 1시간가량 읽고 나서 곧이어 ‘파과’를 관람하는 특별한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오후 3시께 입장한 158명 정원의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 3관은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여느 영화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잔잔한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고 환한 조명 아래서 관객들은 한 눈에도 가뿐해 보이는 단편 소설을 들고 독서 중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독서 중이거나 독서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여성 관객 혼자 오거나 아니면 여성과 같이 온 남성 관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 간혹이지만 혼자 온 것으로 추측되는 남성 관객도 드물게 있었다.

자리에 앉아 펼친 소설 ‘파쇄’에는 어린 ‘조각’이 어떻게 스승 ‘류’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 ‘인간병기’로 재탄생하는지 그려졌다. 구 작가의 필력은 본편인 ‘파과’에서도 압도적이지만, 스핀오프작에서는 인간 신체에 대한 살벌한 묘사가 펼쳐졌다.

약 한 달 간 인적없는 야산으로 일종의 전지훈련을 떠난 조각과 류. 전투식량과 삶은 감자 등을 짊어지고 등산해 앞으로 묵을 산장에 짐을 푼다. 그 시간부터 매분, 매초가 훈련의 시간으로 흐른다. 잠깐 이리로 와서 밖의 경치를 감상하자 해놓고는 가해지는 발길질. 또는 어느 오후 예고도 없이 목봉으로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동물적인 감각이 깨어난 조각이 웬만한 기습에는 본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자 류는 이제는 신뢰를 미끼로 수면제를 탄 코코아를 먹여 조각을 산속에 버린다. 살아 돌아온 조각에게 주는 교훈은 ‘남이 주는 거 덥석덥석 받아먹지 말라’는 거다.

영화 ‘파과’에서 어린시절 ‘조각’(당시 예명은 ‘손톱’)으로 나오는 배우 신시아/NEW 제공
영화 ‘파과’에서 어린시절 ‘조각’(당시 예명은 ‘손톱’)으로 나오는 배우 신시아/NEW 제공

어린 조각이 자신을 거둬준 키다리 아저씨 ‘류’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서사도 ‘파쇄’를 통해 한층 설득된다. 류는 조각을 ‘쓸모’있는 존재로 만들고 키워준 스승이면서도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임을 항상 신경 쓰고 있는 보호자의 면모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살인청부업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자신이 여성으로서 임신, 출산, 육아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 것이라는 점을, 조각은 배 속에 ‘쓸모없는 장기’가 하나 있다고 생각하며 상기한다. 하지만 오히려 ‘류’가 사정없는 발길질과 기습에도 조각의 복부만큼은 가격하기를 주저한다. “그냥 그렇게 생겼고 그렇게 불공평하게 만들어졌다고, 몸이.”라는 대사와 함께.

독서를 마치고 곧이어 시작된 영화 ‘파과’를 보는 관객들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단 한명도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숨죽여 서사를 따라갔다. 조금 전 ‘파쇄’ 속 ‘조각’이 배우 신시아에서 이혜영으로, ‘류’는 김무열로 실사화돼 스크린으로 걸어 들어갔다.

영화 ‘파과’ 에서는 조각(이혜영)과 투우(김성철)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파고든다/NEW 제공
영화 ‘파과’ 에서는 조각(이혜영)과 투우(김성철)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파고든다/NEW 제공

영화가 짙은 여운을 남기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도 자리를 이탈하는 관객이 없었다. 사실 이날 특별 시사회는 예매를 오픈하자마자 곧바로 전석 매진 돼 코어 팬덤의 탄탄함을 일찌감치 보여줬던 터다. 심지어 퇴장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전해졌는데, ‘투우’(김성철 분)의 이야기를 나누며 휴지 끝으로 눈물을 찍어 누르는 그들 대화 속에서 ‘회전문 관객’이라는 단어가 튀어 올랐다. 뮤지컬 배우로 팬덤을 구축한 김성철의 티켓파워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배급사 뉴 관계자는 이번 행사에 대해 “갈수록 극장을 찾는 관객이 감소하는 현실에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면서 극장의 매력을 알리고 싶었다”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서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책을 읽는 나’로부터 일종의 ‘지적 만족감’도 챙길 수 있는 행사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th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