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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아파트 방화범 A씨의 행적 분석해보니

아파트 범행 전 본인 거주지 인근 3차례 방화

유서도 발견, 전문가 “일종의 정화의식” 분석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가 일어나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자제공]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가 일어나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독자제공]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가 일어나 방화 용의자인 60대 남성 A씨가 사망하고 아파트 4층 거주자인 80대 여성 2명은 전신 화상을 입었고 다른 거주자 4명은 연기를 마시고 낙상을 입어 총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방화 용의자는 앞서 자신이 거주하던 빌라 인근에서도 3군데나 불을 지르고 봉천동의 아파트로 향했는데, 전문가들은 A씨의 행동이 “망상에 사로 잡혀 일종의 정화 의식을 한 것처럼 보인다”며 범죄적 망상이 범행의 동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천장 망치로 치고 이웃 향해 욕설 내뱉고…A씨는 ‘동네 유명인사’

A씨의 이웃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불을 지른 봉천동의 아파트의 3층에서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방화 피해를 입은 윗집 주민과 층간소음으로 잦은 다툼을 벌였고 지난해 9월에는 윗집과 쌍방 폭행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지만 서로 처벌 불원서를 내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A씨의 기행은 계속됐다. 천장을 망치로 추정되는 물건으로 치거나 새벽에 악기를 연주하는 등 윗집에 소음을 유발하고 이웃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등 지속적으로 민원이 이어졌다. 그러자 지난해 말, 거주 기간인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거 조치를 당했다. 결국 A씨는 해당 아파트에서 직선으로 1.4km 정도 떨어진 모친이 살고 있는 빌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

A씨가 살던 봉천동 빌라 이웃들도 A씨를 잘 알고 있었다. A씨와 같은 빌라에 거주 중인 신모(20) 씨는 “분에 못 이겨 아침마다 집 앞에 침을 뱉고 욕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며 “인근 건물 공사장에서 소음이 난다고 공사장 직원과 싸우다 다치게 해 벌금을 낸 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A씨의 옆 건물에 살고 있는 B씨는 “한 3년 전부터 모친과 함께 산 것으로 알고 있고,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는 동네가 잠잠했었다. 이 동네에 살 때는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끄럽다고 욕을 하고 창문으로 소리 지르고 침 뱉고 해서 동네에서 유명했다”며 “우울증 약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즘은 안 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갈등 빚었던 빌라에 기름 붓고 농약 살포기로 방화

자기가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에는 예민하게 반응한 A씨. 21일 오전 8시께, A씨는 모친과 딸을 향한 유서를 남겨놓고 집을 나선다. ‘엄마 미안하다’라는 문구와 함께 딸에게 ‘할머니를 잘 모셔라’며 병원비에 보태라고 현금 5만원을 남겨놓은 것이다.

21일 오전 방화 용의자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인근 빌라에 불을 질렀다. 박지영 기자.
21일 오전 방화 용의자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인근 빌라에 불을 질렀다. 박지영 기자.

문밖으로 나온 A씨는 가장 먼저 자신의 집 옆에 위치한, 공사로 인해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빌라로 향했다. 빌라 앞에는 종이 박스 더미가 쌓여 있었다. A씨는 빌라를 빙 둘러가며 기름통에 든 기름을 부었다. 그리곤 분무식 농약 살포기를 이용해 박스 더미에 불을 붙였다.

21일 오전 방화 용의자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인근 빌라 3군데에 불을 질렀다. 박지영 기자.
21일 오전 방화 용의자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인근 빌라 3군데에 불을 질렀다. 박지영 기자.

방화는 계속됐다. 옆 빌라로 이동해 현관 앞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곤 농약 살포기로 불을 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려던 입주민은 현관에서 불을 쏘고 있는 A씨의 모습에 깜짝 놀라 되돌아갔다.

21일 오전 방화 용의자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인근 빌라 3군데에 불을 질렀다. 박지영 기자.
21일 오전 방화 용의자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던 인근 빌라 3군데에 불을 질렀다. 박지영 기자.

A씨는 맞은 편 빌라로 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가스 배관을 향해 불을 쐈다. 창틀과 창살이 불에 녹았다. 인근 주민 B씨는 “처음엔 하얀색 통을 들고 있길래 소독을 하는 줄 알았는데, 조금 이따 보니 불이 나고 있었다”며 “집에서 소화기를 들고 와 간신히 껐다. 세 곳이나 타고 있어 펑펑펑 소리가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이 살던 봉천동 빌라 인근 3군데에 방화를 한 A씨는 8시 10분께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봉천동 아파트로 향했다. 오토바이 뒤에는 기름통 2개가 실려 있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A씨는 농약 살포기를 들고 4층으로 향해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401호와 404호에 차례로 불을 질렀다.

아파트 주민 C씨는 “막 싸우는 소리가 들리다 펑 하는 소리가 들려서 전쟁 났나 했는데 연기가 올라왔다”며 “곧바로 ‘살려주세요’ 소리가 났다”며 순간을 기억했다. A씨는 현장에서 전신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프로파일러 “일종의 정화의식…범죄적 망상이 범행으로”

아파트 방화에 앞선 3차례 방화, 범행 도구로 농약 살포기를 사용하는 등 이번 방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다.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A씨의 방화를 이른바 ‘정화 의식’이라고 표현했다.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이 아파트에 방화를 저지른 용의자의 오토바이가 발견됐다. 오토바이 뒤에는 2통의 기름통이 발견됐다. 박지영 기자.
21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이 아파트에 방화를 저지른 용의자의 오토바이가 발견됐다. 오토바이 뒤에는 2통의 기름통이 발견됐다. 박지영 기자.

“수단이 ‘불’로 바뀌었을 뿐이지 저는 일종의 의식 같다고 봤거든요. 자기가 살던 곳 주변을 불로 정리, 정화를 하고 그 다음에 자기가 살던 아파트로 가서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하는, 일반적으로 라이터나 성냥으로 불을 지르는 것과 이번 사건처럼 토치같은 도구로 불을 지르는 심리는 다릅니다. 토치는 정화를 하는 도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유서를 남긴 것. 마치 전쟁에 출정하는 전사 같은 느낌으로, 일종의 의식을 치른거죠.”

배 교수는 A씨의 범죄적 망상이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하며 사건의 원인으로 층간소음을 지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방화 범죄의 피해자가 층간소음의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층간소음을 원인으로 지적해선 안 된다”며 “A씨가 정신 질환 관련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런 증상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층간소음에 대한 망상이 심해져 결국 범행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