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플법 17개 국회 정무위 계류

민주당 단일안 위한 용역 착수

“中기업 빠져 트럼프 반응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의 대표적인 무역 장벽으로 지목한 ‘플랫폼 관련 규제’에 대해 국내 정치권에서 지속 추진할 것이란 의지가 확인되면서 향후 한·미 간 통상 마찰을 부를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90일간 유예된 ‘상호 관세’를 최종 발효할 때 플랫폼 규제를 한국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를 합리화할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경우 상호 관세 부담이 국내 상장사 전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추진됐던 플랫폼 규제 입법은 여야 간 입장 차이와 업계의 반발 등으로 표류하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선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인 플랫폼 기업에 대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대우 등을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여기엔 규제 대상을 미리 정하지 않고 법 위반 행위가 드러난 기업에 대해서만 규제를 가한다는 국민의힘의 ‘사후추정제’ 내용도 담겼다. 다만 해당 법안은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해 추진 동력이 약화했단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의 특징은 대형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이다. 특정 플랫폼에 대해 집중적으로 단속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만큼 정부·국민의힘 방안에 비해 더 강도 높은 규제로 평가된다. 플랫폼 독점 규제 법안엔 플랫폼 사업자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여러 플랫폼 동시 사용) 제한 ▷최혜대우 요구 등 4대 반경쟁적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지만, 최근 ‘속도 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다. 우선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복수의 온플법과 관련해 단일 법안을 만들기 위한 연구용역 발주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가 플랫폼 규제 입법을 완료하기 위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대외적 압박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규제 대상에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은 물론 구글·애플 등 미국 기업 다수가 거론되면서 통상 갈등 우려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국회 일각에서 통상 이슈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독과점 플랫폼 규제와 불공정거래 규제(갑을 문제)를 쪼갠 후, 갑을 관계 규율 방안만을 담은 법안을 빠르게 처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알려진 것도 같은 문제의식 때문으로 읽힌다.

비록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대해 90일간 발효를 유예했지만, 언제든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조 중인 ‘상호 관세’의 부과 근거로 플랫폼 규제가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플랫폼 규제 법안은)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미국 대기업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주요 한국기업과 다른 국가의 기업은 제외된다”며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다수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플랫폼 규제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으로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라 불리는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 플랫폼)가 규제 대상에 적용되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진행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대표를 지냈던 대표적인 ‘지한파’ 태미 오버비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선임 고문은 플랫폼 규제에 대해 한국 정책 당국의 논리가 합리적이더라도 미국의 시각에서 결과적으로 중국에 전략적 이점을 제공하는 효과를 낳는 규제일 뿐이라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오버비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는 상황에 이 사안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미국 기업에는 적용되지만 틱톡이나 알테쉬 등 중국 기업에 적용되지 않는 법이라면 그를 매우 화나게 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내 점유율을 기준으로 한다는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소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릴라 노라 키스 선임 정책연구원 역시 “한국 규제가 국내외 온라인 플랫폼 모두에 적용된다는 정부입장은 알고 있지만 외교는 ‘인식’(perception)의 문제”라며 “법이 형식상 중립적이어도, 외교 무대에선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법으로 인한 외교 마찰 가능성을 경고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90일간 유예 기간에 벌어진 한미 양국 간 협상 과정에서 플랫폼 규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세게 하고, 이를 근거로 현재 25% 수준의 고율 상호 관세 주장을 고수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관세율을 유지할 경우 국내 증시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14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협상을 이끄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한국을 영국, 호주, 인도, 인도 등과 함께 최우선 협상 대상국(top targets)으로 여긴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의 케빈 해싯 위원장도 같은 날 미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이후 10개 이상의 국가가 미국에 “놀라운” 무역 거래를 제안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관세 부과로 인해 한국이 가장 뼈아플 섹터는 반도체, 자동차 등 국내 증시 시총 상위 대형주를 구성 중인 섹터”라며 “이 경우 기업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른 경기 둔화와 증시 하방 압력 역시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버비 고문은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에 오래된 무역 장벽을 제거할 의지가 있음을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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