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문화와 항공산업의 유산을 발굴·보존·연구 및 전시함으로써 항공문화의 진흥과 항공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항공박물관의 관장으로서 지난 3년간 필자는 ‘항공문화’라는 용어에 꽂혀 있었다. 설립 목적에 기반하여 성과를 창출해 내는 일이 임무였기 때문이다. ‘항공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개념 정립을 위한 용역도 실시하고 여러 차례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의견을 수렴할 때마다 항공문화에 대한 윤곽이 그려지는 듯했지만, 어느샌가 하얀 도화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문화’란 사회적으로 학습된 행동, 사회 구성원들부터 공유된 가치와 신념, 언어·종교·예술과 같은 상징체계, 의식주와 같은 생활양식, 시간과 공간에 따른 지속과 변화 등 문화인류학자들이 수없이 정의해 온 개념들을 중심에 놓기도 하고, 동아시아에서 일반명사화된 ‘항공’이라는 한자어를 파자(破字)해 보기도 했지만, 가슴에 들어와 꽂히는 개념을 찾지는 못했다. 하물며 법률에서 차용하고 있는 항공이나 문화에 관한 정의는 난해함을 더했다.
항공의 역사는 매우 짧다.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기로부터 비롯한다면 겨우 120여 년이다. 이 분야에서는 항공기술과 항공산업이 지배적인 화두였다. 항공기술은 항공기의 설계, 제작, 운항, 유지보수 등에 관련된 기술과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항공기를 제작하고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기술이 포함된다.
항공산업은 항공기를 중심으로 한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운영, 관리, 지원 활동 전반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제조, 항공 운송, 항공 서비스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항공의 근원적인 문답으로 되돌아가 항공산업과 항공문화를 정리해 보면,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항공산업이고, 하늘을 나는 행위에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 항공문화라고 이해해도 좋겠다. 곧 항공의 유의미한 가치와 양식, 사람들이 항공을 이용하는 방식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것이 항공문화다. 나아가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에서 항공문화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 확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연료의 효율성 증대와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기술 개발과 같은 환경적인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한 사회를 위한 기여에도 항공문화는 당당한 의제를 제안해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여객기는 화물기로 변신해 백신과 반도체를 실어 날랐고, 무착륙 비행은 조종사의 운항자격 유지를 위한 비행이자 승객들의 면세품 쇼핑 기회였다. ‘기내식 먹고 싶다’라는 표현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감정의 발로였고, 비행기를 타는 비일상적 경험에 대한 향수였으며, 여행을 통한 재충전과 자유에 대한 갈망의 신호였다.
이처럼 항공문화는 단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교류, 기술적 혁신이 결합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개념이어야 한다. 항공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항공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국면을 읽어내는 혜안을 가져보자.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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