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공동취재단]](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1/23/news-p.v1.20250123.50d32daa8f384128aa5bd5a32b798cc9_P1.jpg)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국가비상입법기구가 제5공화국의 국가입법회의 같은 건가요?” (이미선 헌법재판관)
“아닙니다. 그랬다면 국무총리한테 줬겠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2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최상목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받은 ‘쪽지’의 내용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이 오갔다. 비상입법기구가 국회를 대체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이 실행하고자 했던 정책의 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은 오후 2시에 시작해 5시까지 진행됐다. 윤 대통령 측의 첫 번째 신문 뒤에 이어진 국회 측의 반대 신문에 김 전 장관이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대답해 잠시 중단됐으나 협조를 얻어 정상적으로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비상입법기구’ 두고 질문 폭격
이날 증인신문은 ▷국무회의 진행 여부 ▷‘최상목 쪽지’ 작성·전달 및 내용 ▷포고령 작성자 및 내용 ▷국회 봉쇄 지시 ▷주요 인사 체포 지시 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헌법재판관들은 특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전달받았다는 ‘쪽지’의 내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최 권한대행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받은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하여 보고할 것
·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우선 김 전 장관은 쪽지를 본인이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상계엄과 관련해 행할 조치로 성명을 알 수 없는 실무자를 통해 최 권한대행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비상입법기구란 긴급재정입법권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을 기재부 내에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평상시 대통령이 ‘민생 관련 경제 활성화 법안이 100여건 정도 있는데 거대 야당에 막혀 정지된 상태’라고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나 정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긴급재정입법권한은 헌법7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위해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한하여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한다.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를 전제로 한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1/23/rcv.YNA.20250123.PYH2025012323290001300_P1.jpg)
헌법재판관들은 의문을 표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국가비상입법기구는 입법 권한을 실행할 기구를 생각하신 것 같다. 제5공화국의 국가보위입법회의와 같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980년 10월 헌법 개정을 통해 설치된 제5공화국의 임시 입법기구였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1980년 5월 설치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확대된 것으로, 개정 헌법에 따라 국회가 새로 구성되기 전까지 입법기구로 기능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50인 이상 100인 이내 의원으로 구성된 ‘전두환의 입법기구’였다.
김 전 장관은 강하게 부정했다. 김 전 장관은 “그랬다면 국무총리에게 (쪽지를) 줬을 것이다. 기재부 장관에게 준 이유는 기재부 장관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다”며 “쓸 때 실수한 것 같다”고 했다.
김형두 재판관이 묻자 김 전 장관은 ‘민생법안’을 위해 만든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김 재판관은 “보조금·지원금·임금을 완전 차단할 것이라고 되어있다. 국회를 정지시키겠다는 것 아니냐”며 “임금은 월급을 주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쪽지 내용을 연결해 보면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국가비상입법기구’로 대체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의 말을 끊고 대신 답했다. 윤 대통령은 “기재부 장관에게 전달했다면 국회가 만든 예산의 틀 내에서 일을 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쪽지 작성을 지시한 적이 없다면서도 김 전 장관의 의도를 해석해 설명한 것이다.
김형두 재판관은 포고령 1호와 연관 지어 다시 질문했다. 포고령 1호의 1항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이다. 김형두 재판관은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내용과 포고령 1항을 종합하면 주된 목표는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겠다는 의도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김 전 장관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국회의 입법 활동은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며 “다만 정치활동을 빗대서 국가 체제를 문란하게 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입법까지 막겠다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비상계엄 국무회의 5분 vs 1시간 30분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변호인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단]](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1/23/news-p.v1.20250123.f5aafa0ded02452f88c0e4f737192037_P1.jpg)
정형식 재판관은 비상계엄 당일 국무회의와 국회 봉쇄에 대해 주로 질문했다. 국무회의 규정(대통령령)에 따르면 국무회의에는 ‘의안’이 제출돼야 한다. 김 전 장관은 국무위원을 소집한 뒤 나눠준 ‘비상계엄 선포문’이 사실상 의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무회의가 ‘5분’에 그쳤다는 점도 부인했다.
김 전 장관에 따르면 오후 8시부터 국무위원들이 소집되기 시작했다. 오후 10시 22분께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도착하면서 국무회의 최소 정족수인 11명이 완성됐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고 10시 28분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김 전 장관은 국무위원들이 한명씩 도착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오랫동안 심의한 사람들은 1시간 30분 이상 했다”고 했다. 정족수가 채워지기 전부터 개별적으로 비상계엄에 대해 논의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국무회의가 1시간 이상 진행됐다는 것이다.
정형식 재판관은 보다 구체적으로 “비상계엄의 실체적 요건과 비상계엄 시행 일시, 지역, 계엄 사령관 등에 대해 대통령이 현장에서 (국무위원들에게) 이야기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이 한 것은 아니다. 제가 계엄 선포문을 나눠드렸다”며 “계엄 당위성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말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부서’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부서는 헌법 60조에 규정된 것으로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이뤄져야 한다는 규정이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 증인 신문 종료를 앞두고 약 3분 동안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이유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야당에 대해) 호소해 엄중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라며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한 호소”라고 했다.
국가비상입법기구에 대해서는 김 전 장관과 같은 해석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국보위라면 기재부 장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국보위 안에 재경분과 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해버리면 된다”고 한다. 이어 “국회 입법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선제적으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해도 야당이 불승인하면 그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검토해 볼 수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