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당선 뒤 이행되지 않아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공약 이행을 촉구하지만 전제조건은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행복케 하는 제대로 된 약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트레이드마크는 약속 이행이다. 대선에서 승리가 확정된 직후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에게 한 첫 말이 “국민께 드린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는 민생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이 박 당선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19일 대통령 선거에 투표한 유권자 1036명을 대상으로 사후 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이 그를 찍은 이유로 신뢰와 약속을 꼽았다.
박 당선인이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세종시가 주효했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초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진로 변경해 교육과학중심도시 건설을 추진하자 국회에서 직접 반대토론까지 하며 이를 저지했다.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였다. 세종시에 대한 그의 약속 이행은 대선에서 세종시는 물론 충청권 전체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는 자산이 됐다. 다만 정부 부처의 분산으로 발생할 행정의 비효율 해소는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약속의 힘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약속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일까? 새누리당의 이한구 원내대표는 대선 승리 직후 택시를 버스나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일명 택시법)을 금년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대중교통의 근간을 흔드는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약속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택시법이 통과되면 버스전용차로를 택시들이 점령해 버스 이용자들의 출근시간이 길어질 소지가 많다. 택시업계의 적자는 국민들의 혈세로 보전해줘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의 피해를 초래하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교통전문가들이 택시기사들의 근로여건 개선은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도 택시업계와의 약속을 이유로 밀어붙일 태세다.
많은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당선 뒤 이행되지 않아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공약 이행을 촉구하지만 전제조건은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행복케 하는 제대로 된 약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한 지역개발이나 재정지원 공약들은 전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사실 박 당선인이 내건 가장 큰 약속은 민생 안정을 통해 모든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공약은 국민의 행복과 민생 안정이라는 잣대를 통해 경중을 가리고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한다. 모든 정책은 수혜층과 함께 상대적 피해자와 부작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많은 국민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꼭 해야 할 것을 선택하는 게 대통령의 책무다.
박 당선인은 2010년 세종시 논란 때 당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장자(莊子)의 미생지신(尾生之信) 이야기를 인용해 약속의 유연성을 촉구하자 ‘증자(曾子)의 돼지’ 고사를 들어 반박한 적이 있다. 무모한 약속이라도 윗사람이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자식이 본받는다는 비유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잘못된 약속을 지키겠다고 밀어붙이면 민생이 파탄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