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밥보다 가까웠던 문인들

“시내로 나갔다. 박태순 이문구 그리고 정규 옹과 소주를 마셨다. 정규 옹이 돈이 생겼다 했다. 내가 외상술 내려고 그들을 사슴으로 데려갔다. 실컷 마셨다. 외상은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결국 맥주라는 양잿물을 실컷 마시고도 죽지 않았다. 정규 옹의 집으로 가서 술을 이어갔다. 박태순의 아버지 집으로 가서 이어 갔다. 대취. 거기서 뻗었다.”

시인 고은의 일기 ‘바람의 기록’ 중 1976년 2월 24일자다.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문인들은 몇몇 출판사를 사랑방 삼아 오가며 반가움에, 또 분노와 쓸쓸함에 술에 취했다. 평생 술로 벗삼아 온 고은 시인은 술이 들어가야 말이 나올 정도로 술은 목을 축이는 물이고, 깊은 샘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다.

시인과 소설가에게 술은 밥보다 더 가깝다. 술신을 꼽자면 우선 천상병 시인이 앞자리를 차지할 법하다. 막걸리 두 되면 그는 행복했다. 시인의 술값은 주로 친구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는 당당했고 친구들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이 술추렴이 화를 불러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어려움을 겪는다. 술값 때문에 어느 시인의 집에서 값나갈 만한 책을 훔쳐 헌책방에 판 일도 유명하다.

“술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한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다//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을/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천상병 ‘술’)

시란 낯설게 보기를 통해 세상의 진실에,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라 할 때 세상과의 공감능력이 탁월하고 감각이 예민하게 열려있는 시인에게 세상과 사물을 흐리멍덩하게 해줄 술은 생활필수품인지도 모를 일이다.

술신의 계보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간의 음주 명분을 제공해온 소설 ‘술권하는 사회’의 30년대 소설가 현진건이 있다. 그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씩 술 마시고 밤새워 글을 썼다.

술 취하면 옆으로 걷는다 해서 ‘횡보’란 호가 붙은 소설가 염상섭은 한 번 마시면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 술을 마셨다. 염상섭의 주량은 장안의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우리 문단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술담의 압권은 오상순, 염상섭, 변영노, 이관구의 ‘우중 승우(雨中乘牛)’ 사건이다.

어느 대낮, 넷은 당시 모 중학 통신관이라는 학교 뒤 정원으로 가서 사람을 시켜 술과 고기 안주를 사오게 하고 대낮에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그 와중에 한여름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렸고 피하기는커녕 술판은 이어졌다. 그때 오상순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옷을 찢으며 벌거숭이가 됐다. 그의 호기에 나머지들도 동조, 모두 나체가 됐다. 객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중 한 사람이 근처에 매어놓은 소를 끌고 와 올라타자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를 타고 시내 한복판으로 나섰으니 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개운하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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