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글ㆍ사진 박동미 기자]마카오는 서울 면적의 고작 20분의 1. 여의도의 3.5배다. 작지만 서울보다, 한국보다 훨씬 다채롭다. 사람, 음식, 문화가 그러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작은 동양 여인이 유창한 포르투갈어를 쓴다. 동서양의 맛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요리도 접할 수 있다. ‘음식 천국’ 홍콩에도 없는 진기한 것이다. 밤에는 별 대신 카지노의 화려한 네온 간판이 반짝인다. 낮에는 400년 된 유럽풍 성당에서 ‘안식’한다. 마카오는 최근 ‘도박 도시’ 이미지를 벗고, 가족여행지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화려한 밤도, 평화로운 낮도 모두 마카오다. ‘두 얼굴’의 도시를 만나고 왔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민낯’을 보았다.
▶마카오의 밤…왜 카지노에 금발 미녀가 없나=‘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리는 마카오는 이미 2006년 카지노 총 매출액이 라스베이거스를 앞질렀다. 그런데 이 세계 최대 카지노 도시에는 섹시한 드레스를 입은 늘씬한 금발미녀도, ‘훈남’ 딜러도 없다. 마카오에서는 현지인만 카지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 연방 하품을 해대는 아줌마, 배가 퉁퉁한 할아버지가 딜러를 한다. 한편으로는 정겹지만, 우아하고 멋진 ‘베팅’ 장면을 연출할 수 없어 아쉽다.
본토에서 밀려온 중국 관광객이 카지노장을 가득 메운다. 타인의 게임에 참견도 많다. 중국인은 마작 등 도박이 ‘생활화’해 있는 만큼 편안한 복장과 노련한 자세를 보인다. 통 크게 걸고, 잃었을 땐 훌훌 털고 일어선다. 분출되는 도파민(쾌락과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에 ‘끝장’을 보겠다며 미련을 보이는 건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잃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한두 시간 여흥으로서 카지노는 제법 즐겁다. 슬롯머신과 룰렛말고도 다양하다. 초보자를 위한 무료 강좌를 여는 카지노도 많으니 빅스몰, 바카라 등 복잡다단해 보이는 게임도 한 번쯤 즐겨보자.
▶마카오의 낮…도미니크 성당에서 ‘손을 씻다’=밤이 지고, 아침이 뜬다. 마카오의 낮은 성스럽기 그지없다. 파스텔톤의 고풍스러운 성당 등 식민지 시대 25개 유적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200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밤의 도시’에서 가족여행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마카오의 또다른 얼굴을 보는 시간이다.
세계문화유산 탐방은 마카오 구 시가지, 세나두 광장에서 시작한다. 포르투갈의 체취가 진하게 묻어난다. 세나두(Senado)는 포르투갈어로 ‘시청’이라는 뜻. 실제로 광장에는 시청사, 우체국, 관광청 등 정부기관이 들어서 있다. 16~17세기 지어진 노란 건물이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파 사이로 눈에 띄는 건 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도미니크 성당. 1587년 스페인 출신 신부에 의해 세워진 마카오 최초의 성당이다. 예배당 옆문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땀이 식고, 한기가 느껴질 때면 어젯밤 ‘일확천금’의 욕망도 씻겨 내려간다. ‘하룻밤 노름꾼’은 이미 손을 ‘씻었다’.
세나두 광장을 등지고 길을 건넌다. 이왕이면 택시를 타고 기점인 아마사원까지 단번에 가자. 10분이 채 안 걸린다. 천천히 걸으면서 다시 세나두 광장을 향해 걸어온다. 바라 광장, 만다린 하우스, 로렌스 성당, 아우그스틴 성당을 거친다.
▶‘매캐니즈’식으로 배 채우고 까모에스 광장까지=이제 세나두 광장을 기점으로 세인트폴 성당, 까사 가든, 신교도 묘지까지 이르는 비교적 긴 걸음을 떼어야 한다. 출발 전 ‘매캐니즈(Macanese)’ 식으로 배를 채우기를 권한다. 1500년대 마카오에 정착한 포르투갈 사람은 대부분 선원이었는데, 이들이 아프리카와 인도를 거쳐오면서 진한 커리 국물과 향신료를 가득 싣고 왔다. 이 음식이 포르투갈 요리와 뒤섞인 채 마카오에 전래되면서 탄생한 게 ‘매캐니즈’ 요리. 한국인에게 김치 같은 존재인 바칼라우(염장 대구로 만든 요리)를 비롯해 해물죽 아로스 드 마리스쿠, 아프리칸 치킨 등이 있다.
세인트폴 성당 앞에는 후식거리도 가득하다. 타피오카가 듬뿍 담겨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가능한 꽁차(버블티의 일종), 매콤달콤한 육포, 에그타르트, 그리고 아몬드쿠키 가게가 즐비하다. 디저트까지 챙긴 후 성당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워낙 유명한 장소라서 늘 북적거리는 곳. 어느 위치에서 찍든 원치 않는 ‘단체사진’이 되고 만다. 성당은 세인트폴 대학(1594~1762)의 일부였는데, 극동지역에 지어진 최초의 유럽풍 대학이다. 1835년 화재로 인해 모두 불타 사라지고, 성당 정문과 정면 계단만 남았다.
성당 오른쪽으로 1600년대 초반 지어진 몬테 요새가 자리한다. 300년 동안 제단 역할을 했으나, 포르투갈인에 의해 요새로 전환됐고 후에 마카오 총독 관저, 육군 막사, 감옥 등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성당을 뒤로하고 3분쯤 오르면 나차 사원, 까모에스 광장, 까사 가든, 신교도 묘지 등 현지인에게도 사랑받는 휴식 장소가 나온다. 또 식민지 시대 포르투갈인이 결혼식을 많이 올렸다고 하는 안토니오 성당도 둘러볼 수 있다.
▶해지는 세인트폴 성당…마카오를 닮았네=세인트폴 성당 유적지를 해지는 저녁시간에 다시 찾았다. 중심부인 세나두 광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다시 들르게 되는 곳. 아직 해가 높다면, 유적지 앞에서 마카오 명물을 쇼핑하며 어둠을 기다린다. 선물용으로 아몬드쿠키와 육포가 최고 인기다.
낮과 밤을 모두 체험해야 마카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듯이, 어둠이 스며드는 세인트폴 성당 유적지는 밝은 하늘 아래와는 또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계단 옆 조명이 하나 둘 켜지고, 인파도 잦아든다. 더위를 식히려 들어갔던 성당에서 형용할 수 없는 안식을 느꼈던 것처럼 어둠 속의 성당은 또다른 숭고함을 전달한다.
정점은 교회미술관에서 만나는 ‘천사장 미카엘’ 그림. 세인트폴 성당 대화재 속에서도 그을림 하나 없이 발견됐다. 역사ㆍ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 16~19세기 마카오 종교 유물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천사장의 신비로운 미소가 오랜시간 발길을 머물게 한다. 지난 밤 무모했던 ‘인생역전’ 꿈도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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