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리커창’
지난 1993년. 38세의 리커창은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중앙 제1서기에 임명된다. 이 자리는 후진타오 주석이 8년 전 거쳤던 곳이다. 그의 최고지도부 입성의 단추는 이때부터 끼워졌다고 봐야 한다.
리커창은 안후이 성 허페이 출신으로, 안후이 성 펑양(鳳陽)현 현장 등을 역임한 아버지를 뒀다. 비록 시진핑 부주석 집안보다는 급수가 낮지만 관료 집안에다 지식청년으로 농촌에 하방됐고 지방정부 수장을 거친 점 등은 비슷하다. 그는 지방 관리에 머물기를 원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베이징대 시험에 응시해 현 수석으로 법학과에 입학한다.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딴 그는 중국 저명 경제학자인 리이닝(歷以寧) 교수에게 지도를 받았다. ‘경제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은 정통 경제 교육을 받은 그의 배경과 무관치 않다. 1998년 6월 리커창은 43살의 나이로 중앙에서 허난 성 부서기 겸 성장대리로 임명되며 지방 관료의 길을 걷는다. 당시 언론들은 그를 ‘내일의 별’이라고 칭하며 최연소 성장, 최초의 박사 출신 성장 등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이후 중국 최대 공업지역인 랴오닝 성 서기를 거쳐 중앙정부에 입성한다.
리커창 부총리는 시 부주석보다 성격이 더 호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둘의 상반된 성격이 상호 보완을 이룰 것으로 분석된다.
hanira@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