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직장생활 중 24년을 금융권 CEO로 승승장구…‘일등 전도사’ 우리투자증권 황성호 사장의 도전하는 삶
진작부터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34년의 직장생활 가운데 24년을 최고경영자(CEO)로 지낸 황성호(59) 우리투자증권 사장.
하루하루의 성과가 숫자로 그대로 드러나는 치열한 금융권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CEO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것은 바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성공한 직장인의 표상이기도 한 그는 과연 열정을 다 불살랐을까?
“발전하려면 변해야 하고, 변화에는 불편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을 즐기지는 않지만, 맡은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그다.
꿈은 그를 쉬지 않고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언젠가부터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등 전도사’로 각인된 황 사장은 꿈을 묻자 “우리투자증권을 ‘넘버원(일등)’ 증권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체 없이 답했다.
가을 햇살에 눈이 시릴 정도의 청명한 시월의 어느 오후, 서울 여의도 우리투자증권 본사 12층 사장 직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벽 한켠에 ‘꿈이 없이는 땀을 흘릴 수 없다’는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인생철학을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 한 문장이었다.
▶쉼 없이 달려온 34년 금융인생=고려대 경영학과 72학번인 황 사장은 1979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사하면서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34년 동안 금융업계를 떠난 적이 없다.
오랜 금융 인생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남달랐다.
현재 몸담고 있는 우리투자증권과 제일투자신탁증권 정도를 제외하고는, 외국계 금융기관에서만 20년 넘게 근무했다.
또 다른 특징은 유난히 CEO 생활을 오래했다는 점이다. 37살 되던 1989년 다이너스클럽카드 한국지사장을 시작으로 아테네은행, 한화헝가리은행, 제일투자신탁증권, PCA투신운용을 거쳐 현재 우리투자증권에 이르기까지 24년을 CEO로 살았다.
김지완 전 하나대투증권 사장, 노정남 전 대신증권 사장, 임기영 전 KDB대우증권 사장, 이휴원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등 업계 선배 내지 동갑내기 CEO들이 올 들어 줄줄이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황 사장은 사실상 증권업계의 맏형이 됐다.
“저더러 CEO가 직업이라고 하는데 제가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돈을 벌고 있었던 회사는 우리투자증권밖에 없었어요. 나머지 회사는 모두 적자였거나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려고 죽기살기로 일해야 했죠.”
언제 회사가 사라져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경영자로서의 불안감은 그를 ‘일등 전도사’로 만들었다. 일등의 자리를 굳혀야 어떤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2010년 증권투자자는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던 ‘우리투자증권엔 일등이 참 많습니다’는 광고 캠페인은 황 사장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지난 6월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연임이 확정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증권업의 50개 세부 사업 영역 가운데 22개 부문에서 우리투자증권이 1위, 16개 부문에서 2위를 하고 있다”며 “일등 기업문화를 창달한 데 대해 스스로에게도 좋은 평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코 만족하지는 않는다.
“직원들이 굉장히 능력 있고 참한 일꾼이지만, 역동성은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올라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일등을 하려면 좀 더 진취적이고 역동적이고, 사명감에 불타는 조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의도 최강의 골프ㆍ영어 실력=황 사장은 소문 난 ‘싱글 플레이어’이다. ‘라이프 베스트’는 2005년 경기도 가평의 크리스탈밸리CC에서 기록한 68타. 매번 큰 오차 없이 72~74타 정도를 꾸준히 친다.
그가 여러 운동 중에서도 유달리 골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산다’는 그의 인생철학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프로 골퍼한테 ‘골프는 정말 끝이 없다’고 푸념하니까 그 선수가 ‘끝이 없으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골프는 인생과 같다’는 건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말입니다.”
장년의 나이에도 드라이버 260~270야드를 쳐낸다. 드라이버 300야드를 목표로 지금도 끊임없이 스윙 자세를 변화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골프를 잘 치는 비결에 대해 첫째 변화를 두려워 말고, 둘째 힘들다고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영철학과도 딱 들어맞는다.
“저한테 골프를 어떻게 하면 잘 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의 스윙을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습니다. 저는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지금도 스윙 자세를 바꾸고 있어요. 변화하지 않으면 결코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필드에서는 ‘오케이(기브)’를 주지 않는 냉정한 승부사다.
“(우리금융지주) 회장님과 골프를 칠 때도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회장님도 절대 오케이를 안 주시죠. 운동할 때도 끝까지 노력하는 그런 모습을 존경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골프와 함께 황 사장을 특징짓는 또 다른 장기는 영어다. 그는 증권가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CEO’로 통한다.
2000년 제일투자신탁증권 사장 재직 시절 미국 푸르덴셜금융그룹과의 협상에서 통역 없이 직접 영어로 회의를 진행, 2000억원의 자금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사건(?)은 업계 안팎에 잘 알려진 일화다.
국내파인 그가 영어를 잘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경희고등학교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학년 여름방학 때 영어 선생님이 방학숙제로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모두 암기해오라’는 과제를 내줬다.
황 사장은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모두 다 외웠고 방학이 끝난 후 링컨의 연설문을 완벽하게 외운 유일한 학생으로 기록됐음은 물론이다. 이후 대학생인 형의 방에 꽂혀 있던 취업준비용 영어책을 끌어안고 영어와 씨름하면서 지금의 영어실력을 키웠다.
▶‘인생의 보물 1호’인 아내와 40년=‘인생의 보물 1호’로 주저 없이 아내를 꼽았다. 대학 1학년 때인 1972년 동갑내기 아내 박명숙(59) 씨를 만났다. 연애 기간까지 합하면 만 40년을 함께하고 있다.
“집에서 아내와 있는 게 늘 즐겁다”고 말하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서울교대를 나온 부인은 ‘일보다는 집안 살림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는 황 사장의 고집에 결혼 직후 교사직을 그만뒀다.
“아내는 공부를 참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생활을 계속했다면 아마 지금쯤 교장이나 교수가 됐을 겁니다. 제가 가정을 위해 일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저로 인해 아내의 인생이 바뀌었으니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죠.”
그래서 주말에 시간날 때마다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한다. 인터넷 검색으로 요리법을 찾아 된장찌개를 끊이고, 스파게티와 볶음밥도 만든다. 특히 이탈리아나 그리스 등 남유럽 요리를 많이 한다. 90년대 중반 그리스 아테네은행 공동 대표로 있으면서 힘겨운 시절 즐겨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많은 꿈을 포기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줬기 때문에 보상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서 “모든 면에서 원하는 것을 다해주려고 한다”고 애틋한 심경을 털어놨다. 황 사장의 부인은 현재 방송통신대 영문과 4년에 재학 중이다. 뒤늦게 영어 삼매경에 푹 빠졌는데 아마도 영어를 잘 하는 삼부자에 대한 경쟁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황 사장은 싱긋 웃으며 귀띔했다.
석구(33)ㆍ석현(30)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금융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같은 업종에 있다 보니 얘기가 잘 통해서 좋다”는 말로 잘 자라준 아들에 대한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황 사장은 여느 CEO처럼 지난 시간을 가정보다는 회사 일에 집중해왔다. 그래서 은퇴 후에는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희망사항이다.
“가족 일이라 시시콜콜하게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아무쪼록 가족과의 행복하고 즐거운 꿈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은퇴 후 프로젝트 1순위가 ‘몸짱 되기’다. 목표로 세운 드라이버 300야드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체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은퇴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운동입니다. 키(173㎝)에 비해 몸무게(77~78㎏)가 많은 편인데 5~6㎏ 정도 줄여 ‘몸짱’까지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좋아하는 마라톤도 다시 시작하고 싶고요.”
▶일등 증권사를 위해서라면=꿈을 위해서라면 변화와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요즘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금융권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더 맡게 된다면 그것은 단순히 돈 좀 더 벌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원 차원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 몸담고 있는 업계와 후배들의 발전을 위해 힘들지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삶에 대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적 업무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투자증권을 반드시 일등 증권사로 만들겠다’는 꿈 때문이다.
대형사 사장으로서 좋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보람도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사 안팎으로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개인의 삶은 피곤합니다. 활짝 핀 건지 찌든 건지 잘 모르겠네요. (허허)”라고 답했다.
개인의 꿈과 회사의 목표,어찌보면 양립이 어려울 듯하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불편함도 감수할 수 있다’는 그의 인생철학을 대입해보면 조화가 가능해보인다.
그는 우리투자증권을 일등 증권사로 만들기 위해 ‘일등 추진사무국’을 2010년 11월 사장 직속부서로 출범시켰다. 일등사무국은 회사의 부문별 일등 추진 상황을 황 사장에게 주기적으로 보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 증시가 유례없이 위축된 가운데 이웃 일본의 사례에서 미래 성장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미래상품발굴단을 만들어 불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고 금리가 내려가면 우리도 결국 일본처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증권업은 갈수록 더 힘들어질 겁니다. 일본 금융회사들은 자산이 대부분 해외에 투자돼 있어요. 국내 대형 증권사들도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업계도 노력이 우선이지만 정책당국도 증권업을 너무 규제산업으로만 보지 말고 적극적인 지원 및 육성해 줄 것을 주문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말 잘 듣는 후배가 아닌 역동적인 후배를 원했다.
“꿈과 희망, 용기입니다. 인생은 두려운 게 아닙니다.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역동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김형곤 증권부장/kimhg@heraldcorp.com
정리=최재원 기자/jwchoi@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