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민상식 기자]서울에 사는 20대 남성 A 씨는 최근 학교 후배와 술자리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나 다툼이 1시간 넘게 이어지자 결국 술에 잔뜩 취한 후배는 옆에 있던 ‘맥주병’으로 A 씨의 머리를 내리쳤다. A 씨는 정신을 잃은 뒤 병원에 실려가 머리를 스무 바늘이나 꿰맸다.
충남에 사는 B(35) 씨는 지난달 23일 밤 11시경 술에 취해 부인 C(36) 씨를 ‘전선’과 ‘테이프’로 묶은 뒤 둔기로 때려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혔다. 자신이 애완용으로 기르던 다람쥐를 죽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용품이 강력범죄의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필리핀에서 40대 한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방법 역시 ‘테이프’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는 것이었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병 등 유리병을 흉기로 사용하며 발생한 범죄는 3955건이었다. 유리병으로 벌어진 살인(미수 포함)이 22건, 성폭행(강제추행 포함)도 26건에 달했다.
테이프, 줄, 전선 등으로 발생한 범죄는 614건이었고, 살인이 33건, 성폭행도 17건이었다. 낫 등 농기류로 발생한 범죄도 263건으로 살인(미수 포함)이 14건, 성폭행(강제추행 포함)이 1건이었다. 특히 컴퓨터를 흉기로 이용해 발생한 살인사건도 1건이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현대인들이 폭력성을 너무 쉽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에 있는 생활용품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술에 취한 사람이 화가 나 옆에 있는 맥주병을 들고 범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맥주병을 플라스틱병으로 바꾼다고 해도 폭력성을 드러낸 사람은 다른 도구를 사용해 범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용품이 흉기로 사용되는 데에는 모방범죄나 학습효과에 따른 영향도 있다. 손ㆍ발을 테이프로 묶는 등의 폭력적인 장면을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하면서 모방범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도구를 사용해 범행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면서 “이 같은 범죄를 줄이려면 화를 참거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등 폭력성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