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의 역사는 곧 여성 인권의 역사

강간 피해·원치않는 임신·낙태… 여성 인권 침해 수세기동안 반복

18세기말 생시몽 등 계몽사상 영향 성의 선택·성적 자유 외치기 시작

생어 ‘어머니가 되지 않을 권리’ 제창 산아제한 운동 전개·피임약 개발 임신공포 벗고 적극적 사회활동 촉진

‘임신을 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 자발적 성관계 혹은 강간이나 성폭력에 의해 우발적으로 생긴 임신의 결과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신은 우발적 결과물의 모든 사후 책임을 여성의 몫으로 뒀다. 생물학적으로 그렇다. 성을 즐기려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인한 낙태 피해 등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방편으로서 피임 접근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권한이 법제도 속에 들어온 것은 겨우 20세기 들어서다. 자유와 인권의 나라 미국에서조차 피임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피임에 관한 문헌과 기구를 음란물로 규정한 반외설법인 일명 ‘콤스톡법’이 1936년 사라지면서부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적 남성 주류사회 속에서 생식력의 조정권은 남성에게 있었다. 그 힘의 역사는 유구하다. 노동력이 곧 국력이자 부의 상징이던 고대엔 가임 여성은 재산으로 인식됐다. 그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이란 페르세폴리스의 기원전 5세기 유적지 아파다나 궁은 속국들의 조공 행렬 부조로 유명한데, 아르메니아 진상품을 실은 마차 바퀴 위로 배가 부른 여성이 새겨져 있다. 임산부를 노예로 바쳤던 것이다. 서구 중세 사회에서 성교는 죄악시됐다. 남녀의 정사는 금기시됐고,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선 금욕적 생활이 강조됐다. 부부의 성교는 출산을 위한 목적에서만 한정됐다. 인공적인 피임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났다.

피임이 죄의 굴레를 벗은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근대산업화 물결과 함께 18~19세기 유럽에선 ‘질외사정법’이 널리 유행했다. 피임과 죄의식이 분리된 1차 피임혁명이다. 이 시기엔 과거 정치ㆍ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적이던 여성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며 성적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다. 생시몽, 푸리에 같은 당시 계몽사상가들이 여성에게 성의 선택과 자유를 각성시켰다. 이것이 페미니즘의 시초다.

그 뒤 여성 인권 투쟁은 정치ㆍ경제ㆍ사회 변화에 따라 울림통을 달리할 뿐, 계속돼왔다. 세계1, 2차대전과 세계 공황, 산업화를 거쳐 여성의 사회 진출, 교육 확대에도 여성을 가정 내 출산과 양육 수행자로만 속박하려 하는 뿌리 깊은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전했다.

미국의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ㆍ1883~1966)는 피임의 2차 혁명을 만든 인물이다. 1910년대 뉴욕의 작은 산부인과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과도한 출산과 반복되는 유산과 낙태로 인해 수많은 여성이 고통받는 것을 목격하고 간호사 일을 그만두고 산아제한 운동을 폈다. 생어는 ‘아이 낳는 기계’로 취급하는 폭력에 맞서 ‘어머니가 되지 않을 권리’를 제창했다. 그의 투쟁으로 1939년 의사에게 무제한으로 ‘피임처방권’을 부여하는 법이 제정됐고, 1960년 생어와 과학자들이 피임약을 개발함으로써 여성은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을 앞당겼다.

가부장적 유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피임약 접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서 미혼 여성의 성생활을 공론화하는 일은 터부시되곤 한다. 요즘에서야 초혼 연령 고령화 추세와 불임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혼전 임신은 혼수’라는 우스갯소리도 통하지만, 혼전 순결을 우선시하는 이중적인 순결 지상주의 잣대가 상존해 있다. 미혼 여성이 피임활동에 적극적이면 문란할 것으로 보는 왜곡된 시선도 없지 않다.

국내에서 피임과 낙태를 선택함으로써 불가피한 임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임부의 자기결정권, 행복추구권 논리가 태아의 생존권, 생명의 존엄성 논리에 밀리곤 한다. 형법의 ‘낙태죄’ 규정은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결론나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는 사전ㆍ사후 피임약 맞바꾸기 논란과 관련해 “자기 자유, 자기 방어로 피임 수단이 강구돼 있어야 하는 건 국민의 기본 권리다. 남성의 피임 실천율이 낮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피임을 어렵게 만듦으로써,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10대 청소년의 의료접근권이 낮아지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 “낙태 반대는 종교계의 철학이지, 국가 정책이 될 수 없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생긴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은 낳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낙태할 수 있도록 개인의 재생산권 개념으로 봐야지, 국가가 이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