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박수진 기자]1960년대 전 세계 청년들의 히어로였던 리차드클리프의 노래 ‘더영원스(the young ones)’가 흘러나왔다. 암전된 무대가 점차 밝아지자 가발을 쓰고 선글라스로 멋을 낸 4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형광분홍색 가발을 쓰고 무대 왼쪽에 자리를 잡은 장영순(63ㆍ사진 오른쪽 맨 끝) 씨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위아더원스. 영드림스 슈드비 드림드 투게더(We are the young ones. Young dreams should be dreamed together).” 투박한 영어 발음에 엇나가는 박자, 어설픈 춤동작이었지만 음성과 몸짓 하나하나에 설렘이 묻어났다. ‘63세 소녀’는 수백명의 관객들에게 “우리는 젊어. 모두가 함께 젊은 꿈을 꿔야해”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무대 위에 ‘젊음’이 가득찼다.
장씨는 새내기 중학생이다. 지난 3월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평생교육시설 일성여중에 입학했다. 지난 27일 개교 60주년 기념 제8회 팝송경연대회에 참가해 장려상을 수상하고 “영어 발음이 좋다”는 선생님의 칭찬을 듣는 모범생이지만 그녀가 다시 펜을 잡고 공부를 시작하기까진 50여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딸만 다섯인 ‘딸 부잣집’ 둘째 딸로 태어나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곧장 일터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50년 동안 그녀는 공장 일꾼이었고 누군가의 아내가 됐으며 두 자녀를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의 삶을 살았다. “좋은 남편과 자녀를 둔 나는 복 받은 인생”이라고 자평할만큼 지난 세월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엔 늘 ‘배우지 못한 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많이 배운 사람을 만나면 괜한 열등감에 마음이 불편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딸과 아들에게 혹 많이 배우지 못한 엄마가 폐가 될까봐 늘 조바심이 났다.
그럴수록 배움에 대한 열망은 커졌다. 10대 시절 일을 하면서도 홀로 ‘야간학교’를 찾아다녔다. 서울 보광동의 한 야학을 2~3개월 다니기도 했지만 ‘주경야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공부를 이어가지 못하고 접어야했다. 23세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도 배움의 열망이 있었지만 자녀 뒷바라지에 애써 마음을 다스려야했다.
기회는 위기에서 찾아왔다. 1999년부터 13년간 복지관에서 조리사로 일하던 중 지난 해 예상치 못한 사고로 무릎 뼈가 부러져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일을 그만두고 요양을 하던 중 우연히 TV에서 일성여중학교 모습을 보고 나이와 상관없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뒀던 열망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응원으로 장씨는 공 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매일 2시부터 5시반까지 3~4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장씨는 “이곳에 오길 너무 잘한 것 같아요. 내 꿈을 모두 이뤘어”라며 “못배운 게 나에겐 큰 아픔이었는데…이젠 살면서 더 바랄 게 없어요. 물론 공부를 하는 게 쉽진 않지만 하나씩 천천히 배우려고요. 학교에 오는 길 자체가 너무 즐거워”라며 미소를 띄었다.
자타공인 모범학생인 장씨는 학교 수업 외에도 스스로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다. 팝송경연대회를 준비하면서도 지난 5월부터 약 두달간 매일 한소절씩 영어 가사를 외웠다. 영어 발음을 한국어로 적어 외우고, 아들에게 선물받은 스마트폰으로 등하굣길에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새로운 꿈도 생겼다. 요리에 대한 관심을 전문적인 지식으로 이어가는 일. 중ㆍ고교 과정을 마친 후 영양사 자격증을 취득해 정식 영양사가 되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기분이랄까요?” 그녀의 인생 제2막이 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