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됐던 선수들 다독이며 무한경쟁 유도·김영민 등 유망주 키워내 하위팀서 8연승 단독선두로

‘개천에서 난 용’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떤 반전 드라마보다도 짜릿하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23일 잠실 LG 트윈스전 승리로 창단 후 최다 연승 기록을 8연승으로 늘리며 단독 1위를 질주했다. 넥센의 단독 1위는 지난 2009년 4월 19일 이후 1133일 만의 일이다. 프로야구 시즌 초, 만년 하위 팀 넥센의 이 같은 승천을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김시진 감독의 “우리 팀이 어디로 튈지 나도 모른다”던 말은 현실이 됐다.

넥센은 선수단 운영을 위해 쓸 만한 주력마저 팔아가며 연명해야 했던 가난한 구단이었다. 팬들은 “무분별한 선수 트레이드는 장기 매매와 같다”며 절규했다. 툭하면 마르는 척박한 개천인 넥센에 기대를 거는 야구팬은 많지 않았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김 감독은 구단에 드리워진 그늘을 차근차근 걷어내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김 감독은 척박한 개천에서 수많은 잠룡들을 키워냈다. 넥센의 8연승 단독 1위 비결 중 하나는 안정된 투수진이다. 연일 불방망이로 상대팀을 긴장시키는 넥센이지만 ‘짠물 투구’가 타선에 안기는 안정감이 없었다면 타자들의 풀스윙도 어려웠을 것이다. 김시진 감독은 현역 시절 대투수이자 넥센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를 ‘투수 왕국’으로 키워낸 명코치였다. 김 감독은 김수경, 장원삼, 박준수 등 그리 주목받지 못한 투수들을 조련시켜 일약 에이스급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김시진 감독의 용병술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부진한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는 스타일이다. 김 감독은 원 포인트 릴리프(한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내보내는 중계투수) 사용을 자제하며 마운드에 오른 투수에게 경기를 믿고 맡겼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며 무한경쟁을 유도해 김영민, 서건창 등 새로운 유망주를 키워냈다. 이 같은 ‘덕장’의 다독임 속에서 지난해 최하위를 기록해 위축돼 있던 선수들의 마음은 봄날의 흙처럼 부드럽게 풀렸다. 선수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최대한의 능력을 이끌어내며 화답했고, 팀은 투수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김 감독은 취임 후 첫 ‘가을 야구’를 지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하나둘씩 철거되는 현실에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은 ‘개천에서 난 용’ 넥센의 파죽지세 승천에 감동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동이다. 그 감동의 중심에 김시진 감독이 있다.

<정진영 기자> /123@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