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성과 없이 파열음만 냈다. 유럽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위기 해법을 두고 이견만 노출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분열상은 더욱 심화된 양상이다.
이 와중에 유로존은 각 회원국에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을 마련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자본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유로화는 22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유럽 증시는 한달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유럽 주변국 국채를 투매하고, 독일과 영국 등으로 자금이 몰렸다. 유로존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시장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 셈이다.
▶유로존 분열심화=긴축론과 성장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열린 EU 정상회담은 유로존 위기 해법의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유로존 분열은 깊어졌고, 독일과 프랑스의 틈은 더 넓게 벌어졌다”고 평했다.
이번 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위기해법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올랑드는 취임 후 첫 EU 정상회담에서 “유로존 성장을 위해 유로본드를 도입해야하며, 더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유로본드 도입이 기존 협약에 명백하게 어긋난다면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도 올랑드의 신재정협약 재협상 요구와 관련해 “지금 우리는 재정규율을 완화하는 문제를 협의하는 게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EU 정상들도 이합집산 중이다. 올랑드가 성장의 기치를 내세우자 이탈리아와 스페인 총리가 가세했다. 그동안 재정건전화 정책을 중시했던 오스트리아와 벨기에도 가담했다. 긴축을 지지하는 나라는 독일 외에는 네덜란드와 핀란드 정도다.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쥔 독일과 프랑스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반목하자, 양측 입장 조율이 시급하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번 회담을 준비한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앞두고 이같은 분열양상은 시장의 불안감만 증폭시킨다는 지적이다.
▶시장 패닉 조짐...유로 붕괴 전조?=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서 유로존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비해 비상대책을 마련하도록 각 회원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로존 재무장관들을 대리하는 전문가그룹인 유로그룹 워킹그룹(EWG)은 21일 전화회의를 통해 이같은 방침에 합의하고 각 회원국에 이를 통보했다.
유로존의 한 관계자는 AFP통신에 “이같은 방침이 그리스에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은 아니며, 회원국이 위기 상황에 취해야할 정상적인 수순”이라고 말했다.
독일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도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은 상당한 충격을 주겠지만, 엄격하게 위기관리를 한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유로존 당국자들이 비상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 알려지자, 자본시장은 패닉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 “유로존의 혼란으로 주식과 채권 등 자본시장이 요동치고있다”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유로화 가치는 22개월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대비 달러화 환율은 전날보다 0.8% 하락한 1.2583달러에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2010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채권시장에서는 미국, 독일, 영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면서, 독일 국채 30년물 수익률은 사상처음 2% 밑으로 떨어졌다. 유가도 큰 폭으로 하락해 석유 기준물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올들어 최저수준인 배럴당 105달러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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