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 붉은 길, 푸르른 마음 (1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즐거움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다. 누구나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돈을 조금 덜 받아도 좋으니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이는 미국 코넬 대학교에 몸담고 있는 인간생태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 ‘칼 필레머’ 교수가 한 말이다. 물론 세계적인 생태학자가 한 말이니 멋지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이 녀석아. 네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공연히 네 아버지 허세에 도매금으로 넘어가서는 뭐가 어째? 자동차 경주? 몬테카를로 랠리? 얼빠진 놈, 꼴찌나 하는 주제에.”

이것은 유민 회장의 마수에서 아들을 빼내왔다는 만족감에 들뜬 신희영의 말이었다. 물론 무식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지만 칼 필레머 교수의 말보다는 훨씬 쌈빡하다. 어쨌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즐거워지고, 궁극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유호성에겐 복음과도 같은 말이었다.

“자동차 경주 때려치우고 골프로 전향하면 일이 잘 풀리려나?”

“전향? 네가 간첩이냐? 전향을 하게? 너는 단지 네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온 것뿐이야.”

“아버지와 엄마 사이의 부부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은 아니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승리한 싸움이고, 내가 너를 빼앗아 왔으니까 전리품이 될 수도 있겠네.”

신희영과 유호성은 오랜만에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하와이로 골프 전지훈련을 떠나면서부터 서로 만날 수 없었으니 족히 반년은 헤어져서 지내온 터였다. 동상이몽이라고나 할까? 커피 잔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있지만 서로의 생각 차이는 엄청났다.

“며칠만 쉬고 다음 주부터 골프레슨을 받아야겠다. 강유리 선수와 쌍벽을 이루려면 자타가 공인하는 독선생을 붙여야 할 텐데…”

신희영은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영국의 명 코치 ‘유리 코턴’을 불러올 생각이었다. 그는 스니드, 넬슨, 새러젠 등등의 미국선수들이 골프계를 주름잡던 1937년에 두 번째 브리티시 오픈 타이틀을 획득한 ‘헨리 코턴’의 전설을 이어받은 코치였다.

전설을 이어받은 코치?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이를테면 직속제자의 또 직속제자…의 또 직속제자…의 또 직속제자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엄마, 나보고 그 코털인가 뭔가 하는 영국코치에게 골프를 배우라는 말이에요? 우리나라엔 좋은 코치가 없나?”

“얘, 입 다물어라. 개를 들여놓을 때에도 족보를 따지는 법이야. 하물며… 세계적인 골퍼로 성공하려는 녀석이 아무나 코치로 들여? 그 사람은 자동차 타이어를 사용한 연습법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라고.”

“누가요?”

“헨리 코턴!”

“헨리 코턴은 1930년대 선수라면서요? 올해가 2012년이에요, 엄마. 벌써 늙어 죽었거나… 살아 있어도 100살은 넘었겠네.”

“하여간 그런 대 선수의 직속제자란 말이다. 그러니 찍 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해. 강유리 선수는 타이거 우즈한테 직접 배운다잖니?”

“허! 참.”

유호성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 유민 회장의 눈 밖에 난 이상 생계 자체가 막연해진 까닭이었다. 이제 신희영이 마지막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죽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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