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붉은 길, 푸르른 마음 (1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민 회장이 높은 양반으로부터 하늘이 찢어질 듯한 비보를 전해들은 것은… 이제 막 양은혜의 손가락에 맞추어 다이아 반지의 링 사이즈를 가늠하던 중이었다. 눈부신 다이아몬드 진열장 앞에서 손가락 하나를 곧추세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우아했다.
“독신은 왼손 검지에 반지를 끼우는 거지요?”
가늘고 흰 손가락을 곧추세우고 우아를 떠는 양은혜에 비한다면 퉁방울 같은 눈을 사방으로 굴리며 가격표를 훔쳐보는 유민 회장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다. 그 안쓰럽기 그지없는 사내에게 높은 양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처녀만 왼손 검지에 끼우는 거예요.”
“처녀?”
그러고 보니 양은혜가 치켜들고 있는 손가락은 분명 왼손 검지였다. ‘당신이 처녀라면 파리도 새라고 할 수 있소.’ 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유민 회장은 애써 참아내며 스마트폰의 통화단추를 눌렀다.
“딸이 옷을 홀랑 벗고 제 아버지의 비리를 폭로했더군요.”
“뭐라고? 다… 당신 누구야?”
“벌써 목소리도 잊어버리셨습니까? 관심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그 건조한 목소리, 곧 갈라져나갈 것 같은 목소리… 유민 회장은 즉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높은 양반이었다. 그가 오늘따라 거침없이 내뱉는 내용은 그러나 매우 치명적이었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던 유민 회장님의 자제분도 레이싱을 포기하고 골프선수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그게… 아직 확답을 듣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사모님께서도 이혼하면서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셨더군요. 아마 회장님 전 재산의 50%에 달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재판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직은 저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여겨지는 바입니다만…”
“그토록 여러 가지 문제로 심경이 복잡해진 유민 회장님을 우리 총재께서는 심히 우려하고 계십니다.”
“그래요? 총재님께서?”
“그렇지 않아도 많은 돈이 들어가는 국가적 대사로서…돈은 물론 열정이 없다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임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열정! 저는 그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열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완수해야 제가 얽혀들었던 형사사건도 마무리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마당에 제가 어찌 열정을 보이는 일에 허술하겠습니까?”
“유민 회장님께서는 그만 손을 놓으셔야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라를 위하는 총재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뭐라고요?”
유민 회장은 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그러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나 할까? 마침 그 순간에 양은혜가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를 들어 올려 왼손 검지에 끼웠는데…
“베리 굿, 환타스틱!”
늙은 판매원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가격표를 제시하는 중이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