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8회> 붉은 길, 푸르른 마음 6
지구는 둥글다. 평면이 아니기 때문에 한 쪽이 환한 낮이면 다른 한 쪽은 어두운 밤이 된다. 그런 지구를 터전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삶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지금 유민 회장은 뉴욕 티파니의 별 일곱개짜리 특급호텔에서 벌거벗은 양은혜의 두 발목을 움켜쥐고 있지만, 그 반대편 서울에 있는 재벌 2세는 조만간 북한으로 스며들어 김정은 위원장과 독대를 하기 위한 준비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상대가 와일드하니 조심해야지.’
물론 이것은…티파니의 호텔 침대 위에 양은혜와 함께 누워있는 유민 회장의 고민이었다. 이미 지겟작대기를 오지게 잡혀본 경험도 있는데다, 겪으면 겪을수록 그녀의 성품이 와일드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몸조심부터 해야 돼.’
한편 이것은…조만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북한에 특사로 파견될 재벌 2세의 고민이었다. 대적해야 할 상대라든지 처해진 상황은 보다시피 전연 달랐다. 하지만 고민의 강도는 서로 같더라는 점이 오히려 불가사의 했다.
‘뒤로 공격할까?’
물론 이것은…잔뜩 토라져서 뒤로 돌아누운 양은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유민 회장의 심보였다. 아직도 지겟작대기가 얼얼한 판에, 정면으로 대들다가 또 다시 거길 잡히는 날엔 남아날 수 없을 것이란 불안함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은밀하게 뒤로 접근해야 하나?’
한편 이것은…게릴라 레이싱을 벌이면서까지 언론의 관심을 겨우 다른 곳으로 돌려놓은 재벌 2세의 심보였다. 비밀이 새나간 탓에 높은 양반의 마수에 걸려든 판에, 자칫 언론에 까발려지게 되면 ‘에어 뮬’이나 ‘X-호크’의 개발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란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유민 회장은 한낱 여자의 몸을 얻으려 했고, 거성의 재벌 2세는 3대째 세습권력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을 얻으려 했지만 그들이 하는 짓은 거의 같았다. 전심전력! 사자가 쥐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유민 회장은 양은혜의 광산을 저당 잡혀서 800억원을 얻으려 하고, 신희영은 유민 회장의 재산 절반을 얻으려 하는 중이었다. 그런가하면 강준호는 알량한 골프실력을 미끼로 해서 신희영의 재산을 탐내는 중이었고….
권도일은 유민 회장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며, 강유리는 신희영을 통해 골프선수로 거듭나기를 원하는 중이었다. 현성애는 유민 회장에게 배신당하고 복수를 위해 권도일을 이용하려는 생각마저 하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유한솜은 제 아버지의 원수인 권도일에게 사랑을 느끼는 판국이니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춤추고, 일하고, 싸우고, 질투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야말로 전심전력을 다 하는 결과일 뿐인 것이다.
그 와중에 ‘높은 양반’은 그가 모시는 ‘대선주자’를 새로운 상감마마로 등극시키기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열세에 몰려 있는 대선주자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뭔가 짜릿한 이슈가 생겨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이슈는 생겨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생겨나지 않을 때엔? 이슈를 만들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5개국 관통 랠리를 성공시키세요. 5개국이라 함은 중국, 몽골, 우리나라, 일본…거기에 북한을 포함시키자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유명한 레이서가 북한 지역을 통과하고 평양 거리를 달려야만 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관람하는 모습을 온 세계 TV에 방송하면 더욱 좋겠지요.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분명히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의 좌장이 되고자 하는 내 정책과 이미지를 통합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선주자의 굳은 의지가 높은 양반에게 전해졌고, 이제 그 뜻에 따라 재벌 2세가 나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와중에 유민 회장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런 사실을 알 턱이 없는 그는 티파니에서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