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8회> 바람 부는 길 26
지구 반대편, 시리아 동북 쪽 어느 한 구석에서는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납치극까지 벌이는가 하면…, 강원도 어느 스키장 슬로프에서는 석유연료 자동차가 무한히 발전할 수 있을 것임을 과시하는 게릴라 레이싱 대회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산꼭대기, 이른바 챔피언 코스 슬로프 위에 줄지어 서있던 세계 유수의 명차들은 출발 신호가 터지자마자 곤두박질치며 산 아래를 향해 달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귀를 찢을 듯한 엔진음을 쏟아내면서 꽁무니에서 불을 뿜는 머신들은… 그러나 눈 속으로 파묻혀들기 일쑤였다. 며칠간 계속해서 무릎이 빠질 만큼 인공 눈을 쏟아 부었지만 아직 다져지지는 않은 까닭이었다.
심한 경사면을 직활강하던 머신일수록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리어가 번쩍 들려 제풀에 눈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형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스자로 활강하다보면 바투 붙어 내려오던 다른 머신의 옆구리를 들이받기 일쑤였다. 브레이크 잡는 소리, 라이닝 타는 냄새, 뒷바퀴의 슬립과 함께 분수처럼 뿜어져 날리는 눈발….
“이봐, 코-드라이버! 우승 상금이 얼마라고?”
“어머! 앞이 안 보여. 앞차가 헛바퀴 돌 때마다 눈 벼락을 맞는다고요. 상금이고 나발이고… 제발 저 똥차 추월 좀 해봐요.”
“이거 장난이 아니군. 완전히 롤러코스터야.”
“어머! 저거 봐요. 닷지 바이퍼도 여기선 허당이야. 쉐보레 코베트는 어떻고? 아예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네.”
맞는 말이었다. DOHC엔진보다 토크가 큰 OHV엔진을 장착하여 순간가속을 주 무기로 삼던 닷지 바이퍼나 쉐보레 코베트 역시 급경사의 인공 눈밭에서는 별 볼일 없었다. 타이밍벨트로 캠을 구동시켜 밸브를 열든, 크랭킹샤프트에 연결된 막대로 직접 밸브를 열든, 토크가 크든, 가속이 빠르든…. 이를 테면 머신의 성능이 어떻든 지금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었다. 오로지 복불복! 실력보다 운! 재수 좋고 요령 좋은 작자가 우승 상금 3000만달러를 거머쥐게 될 형국이었다.
“진후 씨! 지금부터 뒤로 달려요. 내가 몸을 돌려서 빽 상황을 읽을게요!”
“아! 맞아. 빽으로 달리면 전륜구동의 효과를 보겠군. 게다가 뒤쪽 유리창에는 눈도 들러붙어 있지 않아서 시야도 트였어.”
김지선은 마침 그 순간, 몬테카를로 랠리를 뛰던 권도일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재규어 XKR을 몰고 펠부 고원을 질주하던 유호성을 그는 후진으로 달려서 따라잡지 않았던가. 유호성의 재규어 XKR이든 권도일의 1974년 산 차타든 간에 후륜으로 구동되는 머신이었다. 후륜구동의 가장 큰 취약점인 슬립을 극복하는 길은… 간단했다. 뒤로 달리면 되는 것. 하지만 전속력을 다해서 뒤로 달린다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짓이었다.
“염병, 한 시즌에 두 번이나 목숨을 거네요.”
코-드라이버 김지선은 몸을 뒤로 돌려 시야를 확보하면서 투덜거렸다. 목숨을 건 일이라고 생각하니 투덜거리는 소리도 제법 비장하게 여겨졌다. 곧이어 머신이 요동을 치는가 싶더니 6000㏄ 500마력의 V8엔진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비록 겉모습은 낡았고 불에 타 일그러진 형상이었지만 모글을 튀어오를 때마다 눈 더미 속에서 그레이스 켈리의 얼굴 모습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오! 좋아, 아! 좋다… 그림 좋다.”
게릴라 레이싱을 촬영하던 감독들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들이 앵글을 맞춘 지역은 한결같았다. 선두경쟁을 하며 산을 치달아 내려오는 머신들이 저 멀리에 잡히고, 토플리스 차림으로 만세 부르는 미녀들의 모습이 가까이 잡히는… 그런 앵글.
강유리와 유한솜은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 강유리’, ‘악덕 M&A 업자 유민’ 등등의 플래카드를 카메라 감독 앞에 번쩍 치켜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고생이었다. 촬영감독들은 토플리스 차림으로 빛나는 두 미녀의 탐스런 모습만을 뷰파인더에 담았을 뿐, 플래카드에 적힌 글귀는 사진에 담지도 않았다. 아예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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