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끝까지, 죽을 때까지 (45)

글 채 희 문 | 그림 유현숙

저 멀리, 고래 턱뼈를 아치 형상으로 마주 세워 만들어 놓은 스테이지 정문이 눈에 들어오자 전진후는 입이 함박만큼 벌어졌다. 평생 코-드라이버로만 살아오던 그로서는 난생 처음 으로 드라이버 석에 앉아 당당히 스테이지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봐, 애송이. 이제 정신이 좀 드나? 저길 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잖아? 곧 신나게 술을 퍼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스테이지에 도착했단 말이야.”

신이 날 수밖에. 술을 잔뜩 퍼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지만 내심 그가 기대했던 대로 ‘인터뷰’라는 걸 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더욱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곧 스테이지 정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최소한 두어 명의 기자가 따라붙겠지. 아마 사진을 찍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하나. 어떤 각도로 차를 세워야 드라이버 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확실히 드러낼 수 있을까…

“진우 형, 스톱! 잠깐 차 좀 세워 봐요.”

“왜 차를 세우라는 거야?”

“자리부터 바꿔야지! 공인 된 정식 드라이버가 차를 몰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염병! 자넨 잠이나 자! 여태까지 코-드라이버 석에 곯아 떨어져 있다가 이제 와서 무슨 헛소리야?”

“고산증세 때문에 어지러워서 눈을 감고 있던 거지 잠을 잔겁니까?”

“시끄럽다. 입 다물어!”

전진후는 오히려 속도를 높여 내달리더니 폼나게 드리프트를 해가며 고래 턱뼈로 세운 스테이지 정문을 통과하고야 말았다. 영화 007의 추격 장면처럼 재규어 XKR은 10여 미터나 먼지를 일으키며 옆으로 미끄러지더니, 급기야 동영상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는 외국인 촬영기자의 코앞에 우뚝 차를 멈춰 섰다.

“오우~ 웰컴!”

이게 무슨 소리냐? 아무리 영어를 모른다고 해도 환영한다는 소리쯤이야 못 알아들을까. 전진후는 기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근엄하게 재규어 XKR의 운전석에서 내려섰다. 기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열광적이었다. ‘모나코 타임’지의 프레스 카드를 목에 건 기자를 위시하여 프랑스의 ‘주르날 드 디망세’, 영국의 ‘데일리 메일’… 심지어 잡지 ‘타임’이나 ‘퓌블리크’의 로고를 가슴에 부착한 기자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저스트 두 잇! 우린 해냈어, 해 냈다고!.”

전진후는 거의 만세 부르듯 하는 포즈를 취하며 오랫동안 외워 온 대사를 내뱉기 시작했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전진후를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보이던 기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재규어 XKR의 뒤쪽을 향해 달려가질 않겠는가.

그제야 정신 차리고 뒤를 보니, 아뿔싸! 거성 그레이스 팀의 권도일, 김지선이 바짝 뒤에 따라붙어 들어온 것이었다. 날이 어두운 데다가 권도일이 라이트를 끈 채로 따라붙었기 때문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결과였다.

“진우 형! 기자들이 어째서 권도일에게 몰려갈까요?”

“글쎄… 여자가 코-드라이버라서 그런 걸까? 김지선이 왕년에 레이싱 모델을 했다며? 아마 그래서일 거야. 선수들이라고 죄다 산짐승처럼 생겨먹은 놈들 투성이 인데 거성 팀에서는 쭉 빠진 미녀가 차에서 내리니 기자들 눈이 뒤집어지는 모양이지?”

“환장 하겠군요, 아무리 미인이라도 그렇지…”

유호성은 고산증세로 인해 해쓱해진 얼굴을 찡그려가며 부러운 듯이 기자들이 몰려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괴감, 질투심, 분노, 실망… 이런 감정들이 장마철 물난리 난 듯이 그의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들이 뒤로 몰려간 이유가 꼭 김지선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기자들이라 언어도 중구난방이었지만 ‘그레이스 켈리!’, ‘뷰티플!’ 어쩌고 하는 그들의 말이 유호성의 귀에 확실히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