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파격할인 유혹
고객들 발길은 되레 한산
작년 실업자만 540만명
청년실업률은 50%육박
정부 잇단 국채발행 성공
국민들 위기극복 의지도
조만간 종합 구조조정 추진
고용사정 더 악화 불보듯
[마드리드(스페인)=조문술 기자] 지난 18일(현지시간) 퇴근 무렵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가의 엘 코르테 데 잉글레스 백화점 주변. 성탄절보다 더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 동방박사의 날(1월 6일) 이후 상점들은 일제히 ‘40~60% 가격인하’를 내걸고 있지만 고객들의 발길은 한산했다.
지난 17일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거리의 상권 역시 마찬가지. 파격적인 할인행사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예년보다 적은 편이라고 안내인은 귀띔했다.
재정위기로 촉발된 스페인의 경제사정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은 당초 2.7%로 예상됐으나 0.7% 성장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이보다 더 악화된 성장률(-1.7%)이 예상된다. 성장률 둔화에 따라 고용사정은 더 악화돼 지난해 실업자 수는 540만명을 넘어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평균 실업률은 유로존 최고치인 21.5%, 19~25세 청년 실업률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실업과 이에 따른 빈곤, 사회불안을 예고하는 상황에서, 집권 두 달 남짓한 우파정권 국민당(PP) 정부는 조만간 종합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계획에는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정부부처 통폐합 및 공무원 감축, 기업 구조조정, 지방공기업 정리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세율 인상도 추진되고 있다. 고용사정 악화가 불을 보듯 뻔해진다.
실제 스페인 정부는 올해 재정지출 90억유로를 삭감하고, 소득세 인상을 통해 60억유로 재정수입을 늘릴 방침이다.
다만 고용 부문 충격 완화를 위해 400억유로 규모의 월간 실업수당 예산은 유지할 계획이다. 스페인은 5년간 근속하면 2년간 기존 임금의 80%를 실업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올해부터 청년층 고용 기업에 1인당 3000유로를 1년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하는 등 고용난 해소에 안간힘이다.
코트라 박성기 마드리드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은 “올해 경제사정은 지난 1, 2년보다 더 어려우며, 고용창출보다는 고용감축이 추세가 될 것”이라며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있지만 새 정부는 생각보다 정교한 경제정책을 구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기 충격을 감안해 무조건적인 재정감축 기조로 가지는 않는다는 방침이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스페인 정부는 지난 17일 49억유로, 24일 25억유로 규모의 중ㆍ단기 국채발행에 잇따라 성공했다. 금리도 이전의 절반 수준에 낙찰돼 신용등급 강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이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지원이 있긴 했으나 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어서 기관들의 신뢰를 회복했다는 뜻이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도 자신감을 얻었다. 지연되고 있는 노동개혁에 대해 조속히 완료하고, 상반기 내 재정안정법을 도입,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을 안정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진통을 예고하는 올해 경제정책은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3월 이전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겉으로는 평온한 편이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와 달리 도심에서 시위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촉발된 ‘Occupy OO’와 같은 소요도 결코 없다.
이런 특유의 낙천적 기질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20일 조기 총선을 통해 사회노동당(PSOE) 정부를 밀어내고 집권한 우파 국민당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높은 편이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마드리드 시민 안드레아스 카스트로(57) 씨는 지난 18일 “전엔 사회노동당 지지자였지만 새로 들어선 국민당 정부의 리더십을 신뢰한다”며 “국민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연금개혁 등 구조조정 등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한국 교민 심봉길(37) 씨도 “세계 최대 관광국으로 지난해에도 5600만명이 스페인을 다녀가는 등 관광관련 산업은 위축되지 않고 있으며, 무역외수지에선 흑자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위기는 중앙정부의 재정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 과도한 부채와 저축은행 및 건설회사의 부실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여타 국가와는 구별된다. 방만한 지방정부와 달리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70%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스페인 산업기술개발센터(CDTI)의 하비에르 가르시아 이사는 “우리 국민은 위기 극복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강하다”며 “재정지출 축소 기조는 유지하되 산업혁신, 청년창업 등도 동시에 추진해 경제 활성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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