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19대 총선이 꼭 1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느 총선 때보다 일찍 찾아온 ‘불출마’ 러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다. 인적 물갈이, 정치 시스템 개혁 태풍 예보로 비치기 때문이다. 과거 총선 때마다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20명 안팎이었고, 대부분 공천 탈락이 확실시되는 총선 1~2개월 전쯤 고령자 다선 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 비해, 이번에는 앞날이 창창한 소장파 의원들이 총선을 한참 앞둔 시점에서 대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벌써 11명이다. 비리 의혹 와중에 불출마를 선언한 ‘형님’ 이상득(76) 의원과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김형오(64) 의원, 당 대표 경선 때 배수진을 치는 차원에서 지역구를 던진 원희룡(48) 의원을 제외하곤,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떨쳐 버리고 나가는 모양새이기에 현재로선 그 ‘용기’에 대한 찬사가 많다.
‘형님’빼곤 19대 총선 불출마 화두는 반성과 쇄신 그렇다면 불출마 선언이 끝인가. 불출마의 정치적 효과는 뭘까. 어떻게 느끼느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국회의원은 면책 및 불체포 특권과 논스톱 공항 출ㆍ입국, 무료 KTX 탑승 등 200가지 안팎의 권한과 혜택을 누린다. 국회의원을 하다 그만두면 일반인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실직의 공포’에 시달린다. 국회의원을 했다는 이력 때문에 웬만한 직장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권력을 놓은 이후 심리적 무력감도 극심하다. 전직 의원 70%가 백수다. 불출마에도 격이 있다. 과거에는 쫓겨날 위기에서 짐짓 용기를 발휘하는 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14~17대 총선 전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내세운 주된 이유는 ‘세대교체’였다. 그러나 이번엔 자책, 쇄신 요구, 백의종군이 주된 불출마의 이유였다. 한나라당 박진(55) 의원은 “구당(救黨)과 소통”을, 현기환(52)ㆍ장제원(44) 의원은 “환골탈태와 쇄신”을, 홍정욱(40) 의원은 “책임 통감”을 얘기하며 떠났다. 민노당의 곽정숙(51) 의원은 “새 정치, 새 사람”을, 민주당 장세환(58) 의원은 “잡음없는 통합”을, 김형오 전 국회 의장은 “백의종군”을 이유로 내세웠다. 실용주의 개혁파로 알려진 정장선(53) 의원은 “4대강 날치기와 국회 난장판에 염증을 느꼈다”고 밝혀 여야 의원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최근 고문후유증 파키슨병으로 작고한‘민주화의 대부’김근태 전 의원은 2002년“꼴찌를 기억해 달라”면서 대선 경선을 포기했고, 2007년에는 아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원직 포기 후 의원직으로 돌아온 경우는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 지자체장, 각료 등 ‘직군’을 바꿔 재등장하는 경우는 꽤 있었다.
17대 땐“국민 여망”… 알고 보면 타의 반 4년 전인 18대 때엔 한나라당의 경우 각 계파의 공천싸움이 치열해 불출마 선언 없이도 현역 물갈이 폭이 컸고, 민주당의 경우 ‘시퍼런 칼날’ 박재승 전 변협회장의 공천혁명이 있었기에 불출마 선언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나 할까.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며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올 4월 분당 재보선에 출마해 손학규 대표에 패했다. 불출마 선언이 유독 많았던 때는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다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은 당내 중진 26명이 “새 시대를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무더기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소장파 오세훈 의원도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다”며 정계를 은퇴했지만, 2006년 ‘깜짝쇼’ 하듯 서울시장선거에 나와 당선됐다. 2000년 16대 총선 전에도 20여명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때에도 ‘노땅’들을 중심으로 한 자의 반, 타의 반 선언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민정계 잔당의 청산, 양김시대 가신들의 정리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5, 6공 인물로 꼽히는 장세동, 김복동, 서정화 씨가 후진 양성 등의 이유로 떠났다. ‘킹메이커’ 허주 김윤환 의원의 YS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때 밀려난 민정계 박세직 씨는 자민련으로 옮긴 뒤 정치권의 변화와 깨끗한 정치 풍토 조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허주도 떠나라’고 했고, 때마침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된 허주는 16대 총선에 도전하지 못했다.
이주일“정치가 코미디”·박경수“농사나 짓겠다” 1996년 15대 총선 전에는 공천 탈락자의 뒤늦은 불출마 선언이 많았다. 하나회 출신의 배명국 의원, 신한국당 권해옥ㆍ신상식ㆍ노인환ㆍ송두호 의원, 국민회의 김장곤 의원 등이 그랬다. 5공 청산 움직임 속에 5ㆍ18의 주역 정호용ㆍ박준병ㆍ허화평ㆍ허삼수 씨는 탈당 또는 은퇴했다. 정치에 대한 염증이 직ㆍ간접적으로 표현된 불출마도 많았다. 코미디언 이주일 씨는 “정치가 코미디판,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면서 탤런트 출신 이순재 의원과 비슷한 시기에 불출마를 선언했고, 박경수 의원은 “정치는 매력 없는 자리, 시골 면장만도 못하다”면서 귀농을 선언해 주목받았다. 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한 중진은 공천을 받고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노웅래 전 의원의 아버지인 노승환 의원은 반(反)DJ 당내 개혁을 주장하다 비슷한 개혁 성향의 조윤형 국회 부의장이 낙천되자 의원직 연장을 포기했다. 당시 유세장에서는 초강적을 피하게 된 여야 후보들이 마포에서 야당 깃발을 오래도록 꽂았던 노 전 의원에 대해 “숭고하다”, “경의를 표한다”며 칭송하기에 바빴다.
2010년‘강행 참여 시 불출마’를 내걸었던 10여명 여의도를 떠난 뒤 여의도로 복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보직’을 바꿔 복귀한 경우는 더러 있었다. 오세훈 의원의 서울시장 ‘전직’, 경남지사직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태호 의원의 총리직 낙마 이후 김해 보궐선거 당선 등이 대표적이다. 전례에 비춰 이번처럼 50대 중반도 안 돼 ‘그 좋다’는 의원직을 포기하는 것을 봐선 뭔가 다른 계획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소장파의 불출마는 한나라당이 많은데, 현재 상황은 좋지 않아도 미래에 대해 자신 있으니까 감행한 것으로 본다”면서 “이 중 상당수가 국회의원 또는 다른 정무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 소장파의 불출마 러시가 과거 노장들의 은퇴 선언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쇄신이라 단정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불출마의 용기는 신선하게 오래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으므로 나중에 재등장했을 때 득표상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 잘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고, 그렇지 못할 경우 급전 직하할 수도 있다. 앞으로 또 누가 불출마를 선언할지 관심거리다. 일단 서울과 영호남의 물갈이 폭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다선과 의정 성적이 나쁜 의원을 중심으로 불출마 행렬이 이어질 전망이다. 2010년 10월 새해예산안 날치기 직후 “향후 모든 강행 처리에 동참을 거부하며,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불출마하겠다”고 자성결의문에 서명한 의원 중 지난 한ㆍ미 FTA 비준안 강행 처리에 참가해 찬성표를 던진 구상찬ㆍ권영세ㆍ김선동ㆍ김세연ㆍ김장수ㆍ남경필ㆍ배영식ㆍ신상진ㆍ윤석용ㆍ이한구ㆍ주광덕ㆍ황우여 의원의 거취를 지켜보는 일도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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