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은 카메라에 익숙하다. 포즈 또한 전문가다. 특별한 주문이 없어도, 카메라의 시선을 리드한다. 그 옆에 한 남자. 쭈뼛 쭈뼛 영 어색하다.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 1년. 그동안 ‘아버지’ 이상봉보다 ‘선생님’ 이상봉과 함께 지낸 시간이 더 많다. 이상봉의 장남이자 ‘이상봉 파리’의 제너럴 매니저 이청청 팀장이다.
“맑을 청에 푸를 청을 써요. 선생님께서 직접 지어주셨어요.”
이름이 멋지다고 하자, 쑥스러운 듯 입을 연다. 이 팀장은 인터뷰 내내, ‘선생님’이란 호칭을 썼다. ‘아버지’란 단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식사 하다가도 무심코 ‘선생님’ 해요. 일에서도, 인생에서도 늘 제겐 ‘선생님’ 이세요.”
짙은 눈썹이 닮았나. 외향부터 예술가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아버지와 달리 부드러운 니트차림에 말끔한 인상은 젊은 CEO 분위기가 풍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은 디자인보다는 경영과 매니지먼트 일에 더 관심이 많다고.
“그래도 청아, 디자이너로서 너 나름의 역할을 계속 해야지.”(이상봉)
이 팀장이 속내를 내비치자,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이상봉이 치고(?)들어온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 아들의 진로 이야기엔 귀가 쫑긋 선다. 영락없는 ‘아버지’다.
“어릴 때부터 경영ㆍ매니지먼트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디자이너로서의 영역도 점차 넓혀 나갈 계획이에요. 특히 남성복 디자인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에서 주목할 만한 젊은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도 소개된 이청청 팀장은 그의 말처럼 디자이너로서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있다. 최근 ‘선배 디자이너’ 이상봉과 함께한 유명 위스키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위스키 병에 단청문양을 덧입혀 아크릴 박스에 담았다. 전통 문화를 미래적으로 재해석한 것. 진한 눈썹 말고도 ‘디자인 철학’이 아버지를 닮았다.
“국내ㆍ국외 불문하고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너무 많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감성을 전부 흡수하고 싶어요. 모두에게 배우는 거죠.”
김연아 선수의 의상부터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한 ‘한글쇼’, 코이카 단원들과 어울린 해외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눈과 귀를 열어두는 이상봉의 ‘오픈 마인드’가 고스란히 이청청 팀장에게 대물림됐다.
“그런데 운동신경은 안 닮았나봐요. 중학교 때까지 선생님과 탁구를 치면,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요. 아예, 점수를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니까요, 하하.”
이상봉 부자의 탁구라니, 흥미를 끈다. 알고 보니 이상봉은 초등학교 시절 탁구선수를 했을 정도. 아들의 탁구 이야기에 아버지는 “우리가 언제 그랬니?” 한다.
“아시안 게임 때, 직접 보기도 했잖아요. 아버지랑 유일하게 함께 본 스포츠 경기에요. 중학교 때까진 자주 쳤고, 20대 중반까지도 일년에 한두 번은 명동에서 쳤던 것 같아요.”
만년 ‘37세’ 이상봉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는 동안, 아들 이청청 팀장은 조목조목 때와 장소를 짚어낸다. 늘 해외로 동분서주하며 바빴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아쉬웠나. ‘선생님’이란 호칭이 사라지고 어느새 ‘아버지’가 돌아와 있었다.
<박동미 기자@Michan0821> pdm@heraldm.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