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노동당 행정부장,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중앙군사위 위원’, ‘인민군 대장, 노동당 경공업부장, 노동당 정치국 위원’.

북한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과 여동생 김경희 이름 앞에 붙여진 화려한 직함들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사망함에 따라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 그 남편 장성택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급작스레 사망함에 따라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은 체제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 두 인물의 역할이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이 지난해 9월 28일 44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의 2인자 부상과 더불어 권력 핵심인물로 부상했다.

1970년대 중반 김정일의 호화 관저를 만들고, 마약ㆍ위폐 거래를 통해 통치자금을 조성하며 승승장구하던 장성택은 음주가무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강선제강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첫 번째 시련을 맞이한다. 이후 노동당으로 복귀, 권력 2인자로까지 부상했지만, 2004년 분파행위를 이유로 김정일의 집중 견제를 받아 다시 좌천된다. 장성택의 재기를 이끈 건 김정일의 건강 악화.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은 그를 다시 평양으로 불러 아들 김정은의 미래까지 맡겼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도 보통 인물이 아니다. 불 같은 성격에, 아버지와 오빠의 반대에도 장성택과 결혼을 강행했지만 그의 가정사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차례나 오빠에 의해 좌천당한 남편, 입양한 딸의 자살은 김경희를 알코올 의존증 환자로까지 만들었다. 김정일의 요리사이자 북한 왕가 회고록으로 더욱 유명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그녀를 “양주를 와인 들이켜듯 마셨고, 술주정이 고약했으며, 이럴 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경희는 복잡한 여인 관계와 수많은 이복형제로 얽히고 설킨 김씨 왕가를 정리하면서 빛을 나타냈다. 김정일의 외도를 아버지 김일성이 모르게 처리하고, 두 번째 부인을 모스크바로 추방한 것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김정일의 부인들은 그 누구도 시누이 김경희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다고 한다. 3남인 김정은이 이복형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역할 때문이란 분석이다.

최정호 기자/choijh@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