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인정사정 볼 것 없다 (2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유호성이 일본 레이싱 스쿨의 전용서킷에서 랩타임 1분 5초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 온 것은, 마침 5개국 관통 랠리의 중계방송권을 따낸 방송사 임원과 유민 회장이 거나하게 술을 마시던 도중이었다. 물론 유도 4단과 특공무술 3단이 밥줄을 보존하기 위해 대충 꾸며서 보고한 기록이었지만 유민 회장은 그 소식에 신이 날 따름이었다.

“내 아들 녀석이 말입니다, 코너가 열두 개에 달하고 길이가 2킬로를 넘는 서킷에서 랩타임 1분 5초를 기록했다지 뭡니까? 허허허! 두고 보십시오. 그 녀석이 결승테이프를 끊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려.”

“거 좀 쉽게 설명해보세요. 아드님이 일본에 레이싱 전지훈련을 떠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전문용어만 쓰시니 잘 알아들을 수 없네요.”

“아, 죄송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요. 내 아들 녀석, 그러니까 장차 5개국 관통 랠리경기에 선수로 나설 그 녀석이 말입니다, 굽이굽이 열두 고개를 돌고 돌아서 달려야 하는 자동차 경기장을 한 바퀴 도는 데에 1분 5초밖엔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말씀이군요?”

“뭐 그런 뜻이지만… 연습경기일 뿐인 걸요.”

“연습경기면 어떻고 실전이면 어떻습니까? 그런 결과를 창출했다는 게 대단한 일이지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기쁘시겠습니다.”

아들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 했건만 유민 회장은 제 아들 자랑에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굳이 팔불출 노릇을 하는 까닭은 분명했다. 보다 큰 무대를 펼치기 위해 막간의 쇼를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말인데요, 상무 님!”

유민 회장은 옆자리에 앉아 술시중을 들던 아가씨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에 목소리를 잔뜩 낮춰서 말하기 시작했다. 방송사 임원과 술 마시는 자리에 여자들이 빠진다는 것도 썰렁한 일이지만, 그와 중요한 사업 이야기를 하려면 파트너들을 밖으로 내보내야만 한다는 것도 거북스러웠다. 파트너 아가씨들을 내보낸다는 것은 곧 중요한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란 전조와 다름없었으므로 방송사 임원은 잠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랠리경기를 중계방송 할 때에도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겠지요?”

“그렇지요. 세계적인 대회일 경우 각국 팀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민족주의 개념으로 접근할 때에 조심해야 할 규정도 있고… 뭐 복잡하지요.”

“만약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을 도입한다면 수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우리가 늘 갈망하는 문제지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중계를 하면 모든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하거든요? 무슨 기발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럼 제안해 보겠습니다. 이번 랠리를 중계할 때에 내 아들 녀석의 헬멧에 카메라를 부착할 수 없을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이를테면 내 아들 녀석의 시각으로 화면을 꾸며보자는 겁니다. 헬멧에 카메라를 달았으니 마치 선수가 직접 운전하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는 모습으로 중계가 이루어지질 않겠습니까? 리얼하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보조카메라를 창 밖에 달아서 내 아들 녀석의 생생한 표정도 함께 찍는 겁니다. 물론 텔레비전 화면에는 두 장면이 겹쳐서 보여 지겠지요. 차창 밖의 리얼한 모습과 선수의 생생한 얼굴 표정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기발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목적이 뭐지요?”

“계획적으로 스타를 만드는 스타마케팅입니다. 내 아들 녀석을 스타로 키워주십시오. 사실 그 경기에서 입상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만약 꼴찌를 해도 좋습니다. 그 녀석이 5개국 산하를 누비며 달리는 동안 시청자들이 감동할 수 있는 스토리를 꾸미면 되지요.”

유민 회장은 목을 탁자 앞으로 길게 늘였다. 이제부터는 속삭여야만 할 것이란 암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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