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인정사정 볼 것 없다 (2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매일 20km 씩 무려 27일이나 걷고, 기었으므로 그동안 유호성이 지나온 행적은 500km를 웃도는 정도였다. 대략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였으니 참으로 엄청났다. 지난 27일 간 유호성의 기억에 남는 일이라곤 오로지 앞으로 전진한 일 밖엔 없었다. 걷다가 지치면 기고, 또 일어나서 걷고, 그러다가 해가 지면 자고… 그렇게 27일을 버텨왔으니…

“형님들, 이거 보세요. 내 체형이 바뀌어 버렸어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단 말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배는 쏙 들어가고 허벅지 굵기는 두 배로 늘었군요.”

“다른 건 다 좋은데, 손바닥이 완전히 솥뚜껑처럼 변한 게 흠이네요.”

“하지만 두 손을 땅에 짚고 엎드리면 자세가 딱 나오더라고요. 왜 그 멋진 사냥개 있잖아요? 그레이하운드라고… 옛날에 고속버스 옆구리에 그림으로 새겨 넣곤 했던 사냥개 말예요. 어깨는 튼실하고 배는 홀쭉하고…”

“나를 완전히 개 취급 하시는 군.”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만큼 드라이버다운 체형이 갖춰졌다는 뜻입니다. 모든 운동경기에는 기본 체형이 90프로를 먹고 들어가는 거예요. 랠리도 마찬가지죠. 그게 얼마나 힘든 경기인 줄 잘 아시잖아요? 멋진 체형을 갖췄다는 건 근육 안에 폭발적인 힘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라고요.”

“거 들어보니 기분 좋은 말이네요.” 사실이었다. 27일에 걸쳐 무려 500여 km를 걷고, 아울러 역기에 아령, 호랑이 걸음에 이르기까지 추가로 몸을 단련했으니 유호성은 사실 다른 사람으로 거듭 나있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그는 알게 모르게 정신상태도 바뀌어 있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눈만 뜨면 스스로 호랑이 걸음을 연마할 만큼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F1레이스의 경우, 인간이 견딜 만한 한계점을 넘어서는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 때엔 체력은 물론 배짱도 두둑해야 한다. 랠리에서도 마찬가지, 거의 낭떠러지 끝에까지 다다른 상태에서 코너를 도는 일은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과도 같다. 터널에서는 또 어떤가… 직선 주로를 잠시 달리다보면 갑자기 터널이 나온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가 싶으면 곧 눈앞이 강렬하게 밝아오며 사물을 구분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시속 250km가 훨씬 넘는 속도로 달리는 중에 생겨나는 일이다. 그걸 견디려면 정신력은 물론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레이싱 스쿨에 입학하게 됩니다. 고급 과정이기 때문에 입학 첫날부터 레이싱 스쿨 전용 스피드웨이를 달리게 될 겁니다. 일종의 전용 경주장인 셈이지요. 코스 총 길이는 2,125m이고 도로 폭은 12m입니다.”

“코스 길이가 겨우 2km 예요? 그까짓 거 기어서도 20분이면 통과하겠네.”

“좋습니다. 그만큼 자신감에 차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리로 갑시다. 가서… 호랑이 걸음으로 코스를 돌겠습니다. 거길 박박 기면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할래요. 어떤 놈이 마지막으로 코너를 돌았는지, 마지노선에서 몇 cm까지 버티다가 핸들을 돌렸는지 타이어 자국을 보면서 확인하렵니다.”

“확인해서 어쩌려고요?”

“그 놈보다 1cm 라도 더 전진한 후에 핸들을 돌려야지요.”

유호성은 벌써 라인 타는 기술을 염두에 둔 모양이었다. 긴 직선구간 앞에서 코너돌기를 할 때에 1cm를 더 나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제동을 늦게 했다는 것을 뜻한다. 제동이 늦었다는 것은 배짱과 기술을 가미하여 그만큼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1cm가 천분의 1초를 단축시키는 거리인지, 만분의 1초를 단축시키는 거리인지는 몰라도 승부를 가르는 거리임에는 확실했다.

“이제야말로 선수다운 근성을 발휘하는 군요, 회장님께 보고해도 되겠어요, 도련님!”

밥줄 끊길 걱정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유도 4단은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