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4

하와이는 물론 미국 본토를 통틀어 제일 어려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코올라우 골프코스 제18번 홀에서 티샷만 무려 열여섯 번을 쳤으니… 강준호의 체면은 사냥개 불독의 얼굴가죽처럼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 홀에서만 평상시 핸디캡의 두 배를 토해냈으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한들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귀신이 곡할 일이야. 내가 이 세상 골프장을 다 돌아봤어도 이런 꼴은 처음 당하거든? 험하기로 소문 난 영국의 골프장에서도 이렇진 않았어. 버크데일CC처럼 모래언덕이 높길 한가, 세인트앤드루스CC처럼 그린이 지랄 맞길 한가… 어째서 공이 미친년 널뛰듯 하냔 말이지.”

억지로 라운드를 마친 강준호는 옷을 갈아입다 말고 라커룸의 간이의자에 걸터앉아 지난 경기를 복기하고 있었다. 돌이켜보건대 이 모든 실수가 마음의 평정을 잃은 탓이었다. 평범한 샷이 최상의 샷인 줄을 너무도 잘 알면서 흥분에 들떠 내지른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느린 스윙이 가장 완벽한 스윙인 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쌕쌕이 소리가 나도록 내질렀던 것일까?

영국의 골프 평론가 버나드 다윈은 골프 치러 가는 것과 장례식에 가는 것은 확실히 다르지만, 그 두 곳에서 느끼는 슬픔은 같다고 했다. 오늘 같은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강준호는 애꿎은 골프화를 벗어서 마른 북어 패듯이 바닥에 한참을 두드린 뒤에야 그나마 분을 삭일 수 있었다. 고요한 라커룸에서 팬티만 걸친 작자가 골프화로 드럼을 친다? 생각만 해도 그 꼴이 가관이었다.

“배고프시지요? 식사나 하러 가실래요?”

가자미처럼 곁눈질을 해가며 강준호의 눈치를 보던 신희영이 조심스레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지금 밥 먹을 기분이 납니까?”

“어머나, 토끼도 거북이에게 질 경우가 있는 거예요. 어쩌다 실수 한 번 했다고 굶어 죽기라도 할래요? 칼라카우아 거리의 레스토랑 순례를 할까요? 아니면 알로하 타워 근방에서 해산물을 드실래요? 혹은 와이키키 해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브랜디소스를 곁들인 정통 스테이크와 바닷가재 맛을 볼까요?”

세로로 길게 두 쪽을 내서 버터에 버무린 바닷가재도 일품이겠고, 양념 없이 소금에 구운 소갈비나 그릴 자국이 선명한 스테이크도 맛있겠지만 지금 강준호의 귀에는 그 어떤 요리도 반갑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미 영혼이 황폐해진 상태였으므로 지금 같아선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스카치위스키나 한잔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술이나 한 잔 사주실래요?”

“술? 어머나, 우리 강 프로님 멋지시다. 드넓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눈물방울처럼 돋아있는 하와이… 거기에서 마시는 술! 좋지요.”

신희영은 즉시 리무진 택시를 대절해서 카파훌루 거리 뒤 블록에 자리 잡은 하리오즈 클럽으로 향했다. 와이키키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인 하리오즈는 건물 안팎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해 놓은 VIP 전용 술집이었다. 도리스듀크 갤러리를 둘러보고 나온 지적인 사람들을 겨냥한 클럽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막상 그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끈적끈적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실내의 한 중앙과 사방 네 군데에 매끈한 무대가 펼쳐져 있었고, 그 무대마다 천정으로부터 바닥까지 세로로 봉이 세워져 있었는데… 봉을 다리 사이에 끼고 빙글빙글 도는 무희는 분명 토플리스 차림이었다. 그나마 엉덩이에 걸친 작은 천 조각도 곧 풀려나갈 듯이 나풀나풀… 조명을 받아 윤기를 내뿜는 무희의 맨 젖가슴과 기나긴 각선미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하물며 그런 무희들이 중앙과 사방 네 군데, 도합 다섯 명이나 되었으니….

“한솜이와 강유리를 떼어내고 온 것이 천만다행이군요.”

강준호는 제법 점잖은 목소리로 이렇게 운을 떼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이미 퀭하게 풀려있었다. 골프 훈련을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원정을 떠나 온 지 벌써 며칠이던가. 그동안 유리와 한솜이의 감시 때문에 본능에 충실할 겨를이 없었으니…. 아방궁의 타락한 선녀들처럼 젖가슴을 드러내고 춤추는 처녀들의 모습을 보자 저절로 끙! 소리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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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