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날개에 숨긴 칼 (4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회장님의 전략은 참으로 엄청나십니다. 이왕에 권도일 전무 얘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그 작자도 철저히 이용하기로 각본이 짜여 있습니다.”
“권도일 전무를 이용해요? 어디에? 어떻게?”
재벌 2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도종호 상무는 아예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권도일 전무의 부친께서 창업한 회사를 유민 회장이 홀랑 잡아먹었지 않습니까? M&A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유민 그룹과 권도일 전무는 원수지간이 되었지요.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유민 회장이 이번 랠리에 제 아들을 출전시키기로 했단 말입니다. 원수끼리 서로 맞붙게 된 것입니다.”
“그렇군요. 거 참 흥미진진하네.”
“하지만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해도 막상 랠리에 나서면 밍밍해질 우려가 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민 회장 아들이 홀딱 반해버린 김지선이란 여자를 포섭해서 권도일 전무와 한 팀을 만들 계획입니다. 유민 회장 아들과 권도일 전무 사이에 김지선이란 여자가 삼각관계로 얽혀야 흥미진진해지지 않겠습니까?”
“김지선?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데요?”
“원래는 레이싱 모델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격도 활달하고 드라이브 실력도 좋아서 이번 5대륙 관통 랠리에 유민 회장 아들과 함께 출전하기로 약속이 된 모양입니다. 정보에 의하면 랠리 훈련 차 둘이 곧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호라! 그럼 유민 회장 아들과 김지선과는 애인 사이로군요. 둘이 좋아 죽는데 무슨 재간으로 김지선을 우리 쪽으로 빼옵니까? 권도일 전무는 그 계획에 찬성했나요?”
“강남에 아파트 한 채 사주면 제 발로 유민 회장의 아들을 걷어차고 권도일에게 달려오리라 확신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자동차 한 대 쯤 더 안기지요, 뭐. 그런 뇌물공세를 마다하고 정조를 지킬 여자가 있으려고요? 게다가 정보에 의하면…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 할 우리 측 첩자가 이미 활동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우리 측 첩자요?”
“예전에 권도일 전무 아버님의 비서로 있던 현성애 씨 말입니다. 어찌 된 셈인지는 몰라도 현성애 씨가 우리 회장님을 위해서 충실히 첩자 노릇을 하는 모양입니다.”
“허, 참! 역시 아버님은 대단하신 분이군요. 2중 3중으로 전략을 꾸미고, 첩자까지 심어놓으신 걸 보면 말입니다. 적군의 적은 아군이라고, 서로 얽혀서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르겠네… 하여간 권도일 전무만 오케이 하면 만사형통이군요.”
“권도일 쯤이야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요. 제까짓 게 따지고 보면 회장님 월급 받는 하인 아니겠습니까?”
재벌 2세는 이제야 모든 내막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계략은 도종호 상무와 로비스트 송달민이 기초한 계획이었다. 도종호와 송달민, 그들이야 말로 돈의 냄새를 맡고 돈을 쫓는 프로들이었다.
‘도 상무! 당신은 회장만 잘 구워삶으세요. 나머지 로비는 내가 할 테니까 말입니다. 곧 우리 앞으로 떡고물이 수억 원씩은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도종호와 송달민은 손가락을 걸고 이렇게 약속한 지 오래였다. 거성 자동차그룹의 실력자인 도종호가 회장을 구워삶은 첫 번째 결과물이 1974년 산 치타를 랠리 경기에 출전시키는 것이었다. 이른바 ‘치타 쇼’였는데 이미 송달민이 랠리경기 단독 중계권을 따낸 방송사 사장과 만나 로비를 벌인 끝에 합의한 내용이었다.
거성 자동차는 나름대로의 실리를 챙겨서 좋고, 방송사는 중계과정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시킬 수 있어서 좋고, 도종호와 송달민은 실적 챙기고 양쪽에서 성과급을 챙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따지고 보면 그들의 전략 때문에 피를 보는 사람은 권도일을 비롯하여 김지선, 유호성, 유민 회장, 현성애 등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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