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날개에 숨긴 칼 (3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그날, 해질 녘의 사하라 사막은 핏빛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무려 37년 전, 권도일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지만 그는 사하라 사막의 핏빛 노을을 감은 눈 속으로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었다. 10년이면 산천이 변한다고 하지만 어디 그럴까? 변하는 것은 사람의 간사한 마음일 뿐, 자연은 어제가 10년 전인 듯, 10년 전이 100년 전인 듯 영원불변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파리 다카르랠리 7일째 구간, 흔히 죽음의 스테이지라고 하는 사하라 사막 구간이었답니다. 아버님이 몰던 1974년산 치타가 모래구덩이에서 뒤집어 졌지요. 사막의 도적떼인 뚜아렉 족에게 쫓기던 중이었는데 그만 넘어진 차체에 친구 분이 깔리고 만 것입니다.”
“뚜아렉 족에게는 어째서 쫓기고 있었나요?”
“그건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벌써 시청 앞에 이르렀으니 자세히 말씀드릴 시간이 없군요.”
“아, 벌써 시청 앞이네요. 5분쯤 후엔 회사에 도착하겠어요.”
“네, 요점만 말씀드리죠. 다행히 뚜아렉 족에겐 발견되지 않아서 둘 다 목숨은 건졌답니다. 그런데 차 밑에 깔린 친구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던 게지요. 차 밑에서 끌어내기 위해 모래를 긁어냈지만 힘에 부쳤던 것입니다. 사막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바닥이 단단한 곳도 있거든요. 두 번째 문제는… 뚜아렉 족을 피해 다니느라 고립된 상태였던 겁니다. 자동차는 뒤집어졌고, 지금처럼 네비게이션도 없을 때이고, 곧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밤이 찾아올 테고…”
“친구를 살릴 재간이 없으셨군요.”
“그렇지요. 낮엔 영상 60도, 밤엔 영하 10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아버님 목숨마저도 위태로워진 겁니다. 마침 그날 밤에 캄캄한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
“아버님께선 그렇게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군요? 친구 분은 사망하셨고요?”
이미 승용차가 회사 근처로 진입하는 중이었으므로 권도일은 다급하게 물었다. 회사 정문을 통과하기 전에 자기는 먼저 차에서 내리는 편이 현명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자 재벌 2세도 그에 부응하여 재빠르게 대답했다.
“친구 분은 이미 죽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버님이 자동차에 불을 붙이던 순간보다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죽은 것 같다니요?”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도 못한 채 급한 마음에 연료통의 기름을 뽑아 불을 지른 것이지요. 불길로서 하늘에 구조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그럼 친구 분은… 차에 깔린 채로?”
“비행기에서 구조신호를 보았다 쳐도 사막 오지까지 구조대를 보내려면 이틀은 걸리거든요? 어차피 구조대가 오기 전에 죽을 목숨이었지만… 아버님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중이어서 판단이 흐렸겠지요.” “현지에서 경찰조사 따위는 받지 않았나요?”
“파리 다카르 랠리에서 사고로 죽는 경우는 다반사 아니겠습니까? 정황으로 보아도 능히 사고사였을 개연성이 높았지요. 나중에 그 차를 한국으로 공수해서 전면 수리한 뒤에 여태껏 보관하고 계신 것이지요. 하지만 그날의 행위를 자책하는 의미에서 도색은 새로 하지 않았어요. 껍데기는 불에 탄 형태 그대로란 말입니다.” 아! 그랬구나… 권도일의 가슴에는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회사에 가까이 당도했으므로 그는 먼저 내려야만 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아쉬움도 많았으나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스르륵 차창이 열리는가 싶더니 2세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래 전 일이니 아버님도 스스로를 용서하셨을 겁니다. 내가 잘 말씀드려 볼게요.”
<계속>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