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날개에 숨긴 칼 (1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한편, 권도일이 37년 전에 생산된 치타를 구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현성애는 트랜스미션 튜닝에 대한 일종의 설계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껍데기는 37년의 풍상을 겪은 클래식 타입이지만 엔진은 적군 유호성이 모는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S에 버금가도록 튜닝하자는 의도였다.
‘오빠는 달리기만 하세요. 엔진 성능은 내가 책임 질 테니까…’
진심이었다. 그녀는 장차 벌어질 5대륙 관통 랠리경기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권도일이 유호성을 앞지를 수 있도록 기원하고 있었다. 트랜스미션 튜닝이란 한 마디로 차의 성격을 바꿔주는 것이다. 37년 전에 만들어진 치타의 트랜스미션은 4단에 불과했다. 이미 만들어진 기존 차량에 단수를 더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기어비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점을 신중히 검토 중이었다.
원래 튜닝 설계를 하려면 의뢰자와 설계자가 한 이불 속에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가능한 한 바짝 붙어서 의견을 주고받아야 좋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권도일과 현성애는 함께 붙어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권도일은 재벌 오너 2세의 명령에 따라 치타를 구하러 전국을 누비는 중이었고, 현성애는 유민 회장의 명령에 따라 곧 시작될 유호성의 일본 전지훈련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현성애는 낮에는 유민 회장의 비서역할, 밤에는 전지훈련 준비를 해야 하는 바쁜 와중에서도 치타의 튜닝설계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권도일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전화를 귀에 붙이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유민 회장의 눈치를 보느라 전화기를 두 손으로 바짝 끌어안고 오랜 통화를 하다 보니 마치 귀에 다리미를 붙이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일편단심은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오빠? 치타는 찾았어요? 아직 못 찾았지요?”
“쉬운 일이 아니야. 벌써 뒤꿈치에 물집이 잡혔더라고. 어때 튜닝 방향은 잡았어?”
“그것 때문에 전화하는 거예요. 혹시 5대륙 관통 랠리의 코스지도를 미리 구할 수 없을까요? 전체 구간 중에서 짧은 코너가 몇 퍼센트나 되는지, 직선구간이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등판구간은 또 얼마 만큼인지… 확실한 데이터를 먼저 구해야 해요.”
“아직 확정 구간이 정해지지 않은 모양이야. 하지만 뻔하지. 랠리의 특성상 구불구불하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산길에 물길, 사막 길이 60퍼센트는 넘지 않겠어?”
“그렇겠지요? 짧은 코너가 많은 테크니컬 서킷을 염두에 두고 기어비를 한껏 촘촘하게 배치하는 방안으로 생각해볼게요. 최고속도를 희생하겠다는 거예요. 흥행에만 신경을 쓸 테니 직선구간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렇죠?”
“그래, 일단 기본방향을 테크니컬 서킷에 맞추고… 후에 구간이 확정되면 데이터 분석을 함께 하자고. 사랑해요, 성애 씨.”
“나도 사랑해요, 고마워요.”
전문적인 분야의 대화라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사족을 붙이도록 한다. 자동차의 동력 성능을 조정하려면 최종감속기의 기어비를 바꾸어주면 된다. 37년 전에 생산된 치타는 앞바퀴 굴림 차로서 최종감속기가 트랜스미션에 내장되어 있다. 그 최종감속기의 감속비를 크게 만들면 차의 최고속도는 떨어지지만 가속능력이 좋아진다는 말이다. 따라서 코너링이나 오르막이 많은 도로, 코너가 사방에 산재되어 있어서 속도를 내기 어려운 길을 달릴 떼에 무척 유리하게 된다. 이런, 세상에…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야 말았다. 마치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잘 치는 골프선수에게 어렵게 코치해서 오히려 폼을 망쳐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밤새워 생각한 짓이 매 맞을 짓이라더니…
어쨌거나 권도일은 권도일 대로, 현성애는 현성애 대로 눈에 불을 켜고 연구하거나 발품을 팔았다. 이 모든 것이 조만간 닥칠 랠리경기에서 유호성을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돌아라! 앞태를 보자, 뒤로 돌아라! 히프 좀 보자.”
무인도에서 알몸으로 뛰어노는 유호성과 김지선은 온 세상이 무릉도원일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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