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늙고 가난한 여성의 삶] ③
종로3가 거리 서성이는 ‘박카스 할머니’
불법적 ‘만남’으로 생계 이어가는 이들
경력 쌓지 못한 여성노인 ‘최후의 선택’
전문가 “가난 속에서 그저 버티는 방법”
[편집자 주] 국내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노인의 삶은 더 곤궁하다. 여성 노인들은 오랜 시간 ‘가족 돌봄’에 헌신하길 요구받았고 집 밖에서의 경력을 내려놔야 했다. 이 경력 단절은 그들에게 직업인으로서 존재감을 옅게 만들었고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했다. 나이 든 그들은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헤럴드경제는 여성 노인의 젊은 시절 헌신이, 시간이 지나 가난과 불안으로 ‘청구’되는 구조를 조명했다.
[헤럴드경제=전새날·이영기·정주원·김도윤 기자] 지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1번 출구를 나오니 도보 50~70m 구간에 간격을 두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고령 여성들이 보였다. 그들은 지나가는 남성들을 빤히 바라봤다. 머리에 눌러쓴 모자나, 양산 아래로는 짙게 화장한 얼굴이 드러났다.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로 불리는 이들이다. 주로 서울 종로 일대에서 고령층 남성을 대상으로 성을 파는 중노년층 여성들을 일컫는다. 1970년대 사직공원 등지에서 노인들에게 박카스 같은 음료를 건네며 접근한 것에서 유래됐다.
이들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는지 묻자 약속한 듯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느냐”,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냐”고 기자가 재차 묻자 한 여성은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며 화를 내고 의자를 든 채 자리를 떴다.
22일부터 이틀간 취재진이 이 일대에서 만난 박카스 할머니는 10여 명. 취재에 응한 A씨는 자기는 매일 같이 종로에 온다며 다른 이들도 이곳에서 오랫동안 같은 일을 했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두고는 “영감들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표현하면서 “(나 같은 사람들이) 서울, 파주, 수원 여기저기서 온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한 차례 만남의 최소 금액은 5만원. 하지만 최근에는 3만원, 2만원을 제시하는 남성도 있다. 손님이 줄어들자 시세를 내린 여성들이 나오면서다. 모텔 대실료 1만원을 빼면 손에 남는 돈은 1만~2만원 남짓이라고 한다.
인근에 즐비한 귀금속 상점 상인들은 ‘불법 성매매가 이뤄진다’며 주기적으로 민원을 넣는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올해 한 차례 단속했다”면서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 확인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이 확인되면 조치를 한다”고 말했다.
‘안 해본 일’ 없는 춘희씨
문춘희(가명, 55세) 씨도 자신이 처음부터 이 일을 했던 것은 아니라며 취재팀에 입을 열었다. 최종 학력은 중학교 졸업. 25살에 결혼한 춘희 씨는 도박과 경마에 빠졌던 남편과 4년 만에 이혼했다. 이후에도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혼자 생계를 꾸려왔다. 제품 공장, 보신탕집, 빵 판매, 과일·채소 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던 일은 여관 청소다. 하지만 2024년 큰 교통사고를 당한 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한 달가량 병원에 입원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았다.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려 보여준 팔에는 살을 꿰맨 자리를 따라 붉은 수술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사고 이후 그가 선택한 ‘일터’는 종로3가였다. 여기서 춘희 씨는 하루 단위로 돈을 번다. 한 달 수입을 묻자 “60만원도 안 돼. 지금 불경기니까”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허탕을 치는 날도 있다. 이날도 오전 10시에 이곳에 나온 춘희 씨는 오후 5시가 될 때까지 손님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
춘희 씨의 가장 큰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80여만원의 돈이다. 그는 “공식적인 일을 하면 기초생활 수급비가 끊길 수가 있어서 음성적인 일을 찾은 것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기초생활 수급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간 제대로 된 직장 생활도 하지 못한 탓에 국민연금 가입 기간도 1~2년에 그친다. 저축은 없다. 서울 청량리에서 살고 있는 집의 전세보증금 2500만원이 사실상 가진 재산의 전부다.
종로3가의 거리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수급비를 합친 돈은 약 140만원. 월수입의 대부분은 70대 노모에게 쓴다. 춘희 씨는 홀로 사는 어머니에게 매달 60만원가량의 용돈을 보낸다. 눈이 좋지 않은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서다. 교통비 6만2000원을 뺀 돈은 생활비로 쓴다.
춘희 씨는 “돈 없어. 벌어놓은 거 없다고”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는 “몸이 너무너무 아파서 몇 년 하고 그만두려고 한다. 나이 먹으니까 힘들다”고 토로했다. 다음 날 다시 찾은 종로3가 거리에서 춘희씨는 전날과 똑같은 차림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춘희 씨는 50대 중반이나 이미 제도권 일자리에선 멀어진 상태다. 젊은 시절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지만 선택지는 좁았다. 공장과 식당, 노점 등을 전전하며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일을 구했다. 하지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안정적인 일을 하진 못했다.
노동시장을 떠난 뒤 다시 돌아올 때도 기존 경력을 살리지 못한 채 저임금·단시간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에 가입할 기회도 없었다. 현재 맞닥뜨린 빈곤은 어느 한 시점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폐지를 줍는 노인이나, 종로의 거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노인들 모두 이 굴레에 갇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 여성의 빈곤을 단순히 현재의 일자리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생애 전반의 노동시장 경험과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준철 전남대학교 학술연구교수는 “(여성 고령자의 일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기보다 가난 속에서 버티는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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