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회> 파멸의 시작 40

“회장님, 드디어 사모님께서 경영에 참여하시게 되는 겁니까?”

“드디어 라니요?”

“그게,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회장님께서 며칠간 종적을 감추신 동안 사모님과 두 분의 남자가 비상경영을 시도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혹시 두 명의 남자가 강준호, 한승우… 이 사람들 아니었나요?

“성함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분은 큰 키에 운동선수처럼 생겼고, 다른 한 분은 젊다 못해 어린아이 티가 날 정도였습니다.”

“어허, 말세로군.”

유민 회장은 애꿎은 시가연기만 깊이 들이마실 뿐 더 이상 할 말도, 들을 말도 없었다. 나라에는 법이 있고, 회사에는 사규가 존재하건만 회장 유고랍시고 느닷없이 들이닥쳐 회사를 주물럭거린 마누라와 그에 놀아난 임원들 모두가 꼴도 보기 싫은 까닭이었다.

“부사장! 스포츠마케팅 팀이 생기면… 차제에 자동차 레이싱을 주도해볼까 하는데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동차 레이싱, 얼마 전에 전라도 영암에서 치렀던 F1경기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 보기보다 엄청난 경비가 든다고 하던데요?”

“아니, 로켓트처럼 생겨먹은 그런 자동차는 한 대 값만 해도 300억원이 넘는답디다. 그런 건 엄두를 낼 수 없고… 일반 상용차로 사막이나 산길 등지를 누비는 경주가 있다고 하네요. 그 경주를 주도해볼까 하는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경비라든가 방법 등을 조사해주세요.”

“그것도 떡볶이 전략이십니까? 회장님. 좀 무리한 계획 아닌가 싶습니다만… 하여간 잘 알겠습니다. 스포츠마케팅 팀장이 부임하는 대로 의논해서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야. 부사장 혼자 나름대로 조사해 보세요. 스포츠마케팅 팀장은 아주 단순한 왕년의 골프선수랍니다.”

“실무 경험 없이 오로지 골프선수만 했던 분인가요?”

“글쎄, 더 이상은 나도 몰라요. 궁금한 사항은 모아두었다가 내 마누라에게 물어보라니까 그러시네.”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마누라와 마누라의 일당이 회사로 진격해 들어온다는 사실을 그는 더 이상 제 입으로 떠벌이고 싶지 않았다. 부사장을 불러 이 정도로 언급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더 이상 알 바 아니었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1년 안에 현금 3000억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상념이 오갈 뿐이었다.

“1년에 3000억원이면, 한 달에 300억원, 그걸 30일로 나누면 하루에 10억원이로군. 아연괴 하나에 50만원이니까 10억원이면 … 으헉! 하루에 아연괴 2000개를 팔아야 겨우 충당할 수 있는 돈일세.”

갈비탕 한 그릇 시켜놓고서 뼈다귀 빼고 기름 빼면 남는 게 뭐가 있으려나? 지겟작대기 한 번 잘못 놀린 죄로 마누라에게 뼈다귀 빼주고, 장부 장난 좀 놀았다고 안가로 끌려가 높은 양반에게 기름 빼주니 남는 건 빈 봉투뿐이었다.

“이봐요, 회계 담당 이사에게 각 사별로 세무조정계산서 취합하라고 하세요. 취합하는 대로 내 방으로 오시라고 해.”

마치 뜨거운 부뚜막에 올라앉아 있었던 것처럼 유민 회장은 엇 뜨거라! 하는 심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동안 간덩이가 부어 있었던 탓인지 대략 큰돈일 것이라고 피상적으로만 여겨왔던 돈 3000억원이, 막상 구체적인 계산을 통해 보니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이거 난리 났군, 어쩌고 하면서 마른 침을 삼키는 동안에 회장실 창문 너머로는 장차 스포츠마케팅 팀장이 앉을 회전의자가 배달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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