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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호진의 부동산터치!]‘집값 원상회복’이 불러올 재앙
‘강남 반토막’땐 나비효과로
‘하우스푸어’ 양산에 금융 부실 초래
민간소비 얼어붙어 경기불황 부채질
선한 명분 집착보다 현실 수용성 봐야

‘규범경제학’ 이라는 게 있다.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라 경제는 이래야 옳다는 식으로 명분에 집착한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이 딱 그렇다. 비정규직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에 저촉되고 공정성을 해치니 없애야 한다. 취약계층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려면 최저임금이 1만원은 돼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려면 주52시간제를 예외없이 적용해야 한다. 원전은 일본 후쿠시마 사태를 보니 재앙이므로 접고 태양광·풍력 같은 자연에너지로 가야 한다.

이런 옳고 착한 정책의 결과는 어떠했나. 최저임금 1만원은 자영업자 파탄과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더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주 52시간제의 일률적용은 미래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비정규직 제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정규직이 ‘불공정하다’며 막아선다. 탈원전은 반세기 걸려 축적한 기술력의 해외유출과 또다른 환경훼손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세상을 쉽게 본 정책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도 규범경제학적 접근을 하고 있다. “작금의 집값 급등은 한 줌도 안되는 강남 투기 세력이 원흉이고, 만 악의 근원인 이들을 박멸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투기세력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시행한 징벌적 보유세와 공시가격 인상은 애먼 세입자들에게 전가돼 월세가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9억 초과 아파트 대출 규제는 9억 이하 아파트 매수 점화로 잠잠하던 중가 아파트 가격 상승까지 촉발해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급기야 “급격한 가격상승이 있었던 강남권은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친 집값’에 엄청난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에겐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한 순간의 집값 급락이 우리 경제에 일으킬 평지풍파를 알게되면 박수칠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 말 대로라면 서울 강남의 대장주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 아파트(현재 32억~34억원)는 2017년 5월 이전 가격인 18억원선으로 떨어져야 한다. 강북의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 아파트는 2017년 8억원선 이었으나 현재 16억~17억원 선에 시세가 형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아파트.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3.3㎡당 1억원 시대를 열면서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됐다. [대림산업 제공]

성돼 있다. 두 아파트가 원상회복되려면 가격이 거의 반토막나야 한다. 강남북 대장주들의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면 서울 비강남권과 수도권 외곽 아파트 값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보호하려는 실수요자들이 집값 급락의 폭탄을 맞게 되는 셈이다.

집값이 하락하면 집을 사기 보다는 우선 전세로 있어 보자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집값은 하락하는 데 전셋값은 올라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반환하기 힘든 ‘깡통전세’까지 등장한다. 이같은 ‘하우스푸어’의 만연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나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진다. 금융회사들의 신규대출 여력이 줄게되고 이는 투자와 소비를 얼어붙게 한다.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 수준임을 감안하면 경기는 불황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성장률에 치명타로 작용하는 것이다. 집값 폭락은 외환위기까지 불러들이는 위험인자다. 부동산가격 폭락→은행대출 담보 부실화→은행 국제신인도 하락에 따른 해외 차입제한→외환 부족으로 전개되는 양상으로 1980년대 북유럽 국가들이 경험했다.

강남 아파트 가격이 반토막나는 일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대공황 때나 있음직한 일이다. ‘깡통주택’ 만연에 따른 하우스푸어 양산, 금융 부실, 민간소비 침체, 그리고 심지어 외환위기 까지 조장할 재앙의 불씨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위험을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가려한다면 무모한 짓이다.

문재인 정부의 우격다짐식 부동산 규제는 타이밍도 좋지 않다. 경제가 불황으로 가는 가운데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추진하지 않고 반대로 냉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공급이 달리는 서울지역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부동산규제와 불황이 맞물려 신음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규범경제학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실증경제학이다. 경제현상을 있는 사실 그대로 분석하고 경제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발견해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한다. 부동산 시장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씨름하는 복잡계다. 명분에 집착하면 결과가 엉뚱해진다. 이기적 탐욕은 규제하되 자연스런 욕구는 숨통을 터주는 유연함을 가져야 할 때다.

선임기자/m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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