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년 만에 1억 모아 수지 첫 집 매수

예비 남편은 분당 선택…결혼 전 각자 한 채

“가격 떨어져도 직접 들어가 살 집 골랐죠”

본 기사는 당사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이름과 일부 사실관계를 각색해 작성했습니다.

[헤럴드경제=윤성현 기자] 통장에 1억원이 모이자 집부터 알아봤다. 금융권에 입사한 지 약 2년 만이었다. 결혼자금으로 남겨둘 수도 있었지만, 그는 대출을 보태 경기 용인 수지의 6억원대 구축 아파트를 샀다. 결혼을 앞둔 예비 남편도 비슷한 시기 성남 분당에 9억원대 첫 집을 마련했다.

약 2년 뒤 두 사람은 각자 산 집을 모두 팔았다. 수지 아파트는 약 12억원, 분당 아파트는 약 17억원에 매도했다. 서울 밖에서 한 채씩 시작한 부부가 다음 집으로 선택한 곳은 반포였다.

20대 직장인이자 부동산 인플루언서 ‘시오리’(@c.ori.money, 인스타그램 활동명) 부부의 이야기다. 출발부터 반포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시오리가 첫 집을 살 때 따진 것은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보다, 떨어져도 버틸 수 있을지였다.

“전세가 안 나가거나 가격이 떨어져도 내가 직접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게 제 기준이었어요.”

저축과 투자, 대출을 동원하고 남편은 부모의 지원도 일부 받았지만 1억5000만원이 전부였다. 그 자금으로 각자 첫 집을 마련한 두 사람은 어떻게 반포까지 갔을까.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아파트 전경. [헤럴드DB]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아파트 전경. [헤럴드DB]

“돈 모으면 집부터 사라”…입사 2년 만에 1억 모으자 부동산行

그가 첫 집을 산 건 2024년 여름이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25평대 구축 아파트를 6억원대에 매수했다. 취득세와 기본적인 수리비 등을 포함해 자기자본 약 1억5000만원을 넣고, 나머지는 3%대 금리의 4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로 마련했다. 처음 받은 주담대만 약 5억5000만원이었다.

사실상 모아둔 돈 대부분을 집 한 채에 쏟아부었다. 시오리는 당시를 “완전한 영끌”이라고 표현했다.

비슷한 시기 예비 남편 역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구축 아파트를 9억원대에 샀다. 당시 두 사람이 선택한 집은 모두 서울 밖에 있었다. 그러나 매수 약 2년 뒤 두 사람은 두 채를 모두 처분하는 결정을 내렸다. 다음 목적지는 서울이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가장 비싼 동네 중 하나인 반포다.

시오리가 처음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계기는 직장이었다. 금융권에 입사한 뒤 주변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돈 이야기를 하게 됐다. 특히 30대 팀장급 선배들에게 반복해서 들은 말이 있었다.

시오리는 “회사 선배들이 ‘돈 막 쓰지 말고 열심히 저축하고 투자해서 집을 사라.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입사교육에서도 금융과 경제, 집값 같은 내용을 접하다 보니 집은 언젠가 반드시 사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집은 먼 훗날의 목표라기보다 해결해야 할 숙제에 가까웠다. 결혼자금과 노후자금, 주택 마련 같은 인생의 큰 목표 가운데 하나를 먼저 끝내놓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시오리의 성격이었다. 목표가 생기면 오래 기다리는 편이 아니었다. 시오리는 “내가 성격이 굉장히 급하다. 목표가 하나 생기면 빨리 해야 마음이 편하다. 인생을 약간 ‘퀘스트’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언젠가 집을 살 거라면 그냥 빨리 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준을 세웠다. 먼저 1억원을 모으자. 입사 뒤 저축과 투자로 돈을 불리기 시작했고 약 2년 만에 목표 금액에 도달했다.

2024년 부동산 시장 분위기도 그의 선택에 영향을 줬다. 시오리가 살펴보던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직전 고점에서 상당 폭 조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는 당시 체감상 전고점보다 20~30%가량 내려온 단지도 적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은 단순했다.

“투자로 집을 사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직접 들어가 살 수 있어야 해요. 전세가 안 나가거나 가격이 떨어져도 내가 살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는 게 제 기준이었어요.”

시오리

실제 첫 집을 계약한 날에도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부동산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계약금을 보낸 뒤 돌아왔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부모가 놀랐지만 그의 생각은 이미 정리돼 있었다. 가격이 떨어지고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도 자신이 직접 들어가 대출을 갚으며 살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용인시 수지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용인특례시 제공]
용인시 수지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용인특례시 제공]

서울 관악구 대신 수지…“하급지 서울보다 수지가 낫다”

시오리가 첫 집을 알아보면서 처음부터 서울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같은 돈이라면 서울의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지역보다 자신이 잘 알고 주거 수요가 탄탄한 경기 남부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시오리는 학생 때 경기 남부로 이사한 뒤 분당과 수지를 주생활권으로 삼아왔다. 어느 동네가 선호되는지, 학군과 상권은 어디에 형성돼 있는지 직접 생활하며 익혔다. 첫 집 역시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는 수지·분당권 안에서 찾았다.

그는 “20~30대가 처음 집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직장 근처이고, 그다음은 본가나 자기가 살아온 곳”이라며 “저에게는 분당과 수지가 그런 지역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시오리가 중요하게 본 것은 학군과 전월세 수요였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더라도 가격이 떨어졌을 때 꾸준히 들어올 실수요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학군 수요가 탄탄하고 강남 접근성도 갖춘 수지라면 시장이 좋지 않을 때도 상대적으로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 아는 지역이라는 점이 컸다.

“모르는 지역에는 함부로 투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골목 하나만 건너도 분위기나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런 건 지도나 부동산 앱만 봐서는 알 수 없거든요.”

시오리

실제 낯선 지역을 살펴볼 때는 그곳에 사는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 평소 친하지 않던 회사 후배에게도 동네 분위기와 상권, 사람들이 선호하는 단지가 어디인지 묻곤 했다. 그는 “결국 지역 이름만큼 중요한 게 그 안에서 좋은 단지를 고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고른 곳이 수지구청역 인근의 25평대 구축 아파트였다. 역을 이용하기 쉽고 학군과 임차수요가 받쳐주는 데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직접 들어가 살아도 된다고 판단한 집이었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시기 남편은 서울을 먼저 보고 있었다. 회사 선배의 추천을 받아 강동구와 관악구 일대 아파트 매수를 검토했지만 시오리는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강동은 당시 두 사람의 생활권을 고려하면 물리적인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다고 봤고, 관악은 학군과 주거환경 등을 고려할 때 굳이 경기 남부 대신 선택할 이유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신 시오리가 남편에게 권한 곳은 서울 성동구 금호동과 경기 분당이었다. 이 가운데 남편은 결국 분당 정자동을 택했다.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각각 수지와 분당에 집을 마련하게 된 배경에는 “무조건 서울”보다 실제 살기 좋은 생활권과 탄탄한 수요를 먼저 보겠다는 공통된 판단이 있었던 셈이다.

현금 1억5000만원에 대출 5억5000만원…“완전 영끌이었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당시 모은 돈은 약 1억원이었다. 이후 성과급과 추가 저축을 보태 잔금을 치를 때까지 마련한 돈이 늘었다. 취득세와 세를 놓기 위한 기본적인 수리비까지 합치면 시오리가 첫 집에 투입한 자기자본은 약 1억5000만원이었다.

나머지는 대출이었다. 당시 3%대 금리로 40년 만기 주담대를 받을 수 있었고 초기 대출 규모는 약 5억5000만원이었다.

시오리는 “당시에는 완전히 영끌이었다”며 “집을 사고 나니 사실상 남아 있는 현금도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

실거주 대신 임대를 택했다. 집을 수리한 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45만원을 받는 세입자를 들였다. 본인은 투자자로 남되,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 언제든 직접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한 셈이다.

그는 첫 집을 사면서도 수익률만 계산하지 않았다고 했다. “세입자가 안 구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가격이 더 떨어지면 버틸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는 설명이다.

예비 남편은 정자동 9억대 구축 매수…전세 4억 끼고 ‘각자 한 채’

당시 예비 남편 역시 비슷한 시기 집을 샀다. 두 사람의 매수 시점은 불과 한두 달 정도 차이였다.

사실 시오리가 부동산을 사기 전부터 “집은 사야 한다”고 먼저 말했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다만 두 사람이 종잣돈을 만든 과정은 달랐다. 시오리는 취업 후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 반면 남편은 20대 초반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돈을 모았다고 한다. 대학생 때 받은 상금이나 여유자금도 주식에 투자하면서 비교적 일찍 종잣돈을 만들었다.

서울에 올라온 뒤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도 겪었다. 원룸에서 임차생활을 하던 중 전세사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부친에게 혼인 증여로 1억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시오리는 “저희가 집을 샀다고 하면 양가 부모에게 큰 돈을 증여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남편이 지원받은 돈은 전세사기 이후 받은 혼인 증여 1억5000만원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남편이 고른 곳은 분당 정자동 역세권의 구축 아파트였다.

매매가격은 9억원대. 약 4억원의 전세보증금이 끼어 있던 집이었다. 남편은 부친에게 받은 1억5000만원과 자신이 모은 돈을 넣어 매수했다. 처음에는 세입자가 있어 별도의 주담대를 받지 않았지만 이후 세입자가 나가면서 약 3억5000만원의 주담대를 받아 실거주로 전환했다.

두 사람의 성향은 정반대였다. 시오리가 대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라면 남편은 이자를 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시오리는 “남편은 처음에는 더 저렴한 집을 사려고 했다”며 “대출이자를 많이 내는 것을 싫어했는데 제가 조금 더 좋은 집을 사자고 계속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그 선택의 결과는 2년 만에 숫자로 나타났다. 9억원대에 샀던 정자동 아파트는 최근 약 17억원에 매도했다. 시오리가 매수한 수지 아파트 역시 약 12억원에 매도했다.

하지만 시오리는 첫 매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방식을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건 ‘버틸 수 있는 집’을 사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2년 뒤 두 사람은 그 두 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집을 찾기 위해 성수와 옥수, 잠실, 개포, 대치, 청담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20억원대 집을 고민했던 이들의 예산은 임장을 거듭할수록 30억원, 40억원대로 올라갔다. 결국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반포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오리는 이미 계약 직전까지 갔던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를 포기했다. 계약을 깨면서 감수한 돈만 1억2000만원이다.

첫 집을 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유는 하나였다.

더 좋은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선 수지와 분당의 두 집을 정리한 뒤 본격적인 ‘서울 갈아타기’에 나선 시오리 부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성수동 트리마제 매수를 눈앞에 두고도 약정금 1억2000만원을 포기한 이들은 왜 계약을 깨고 다시 강남권으로 눈을 돌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