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예외’ 악용, 자가주사제 공급량 60% 안팎 의료기관 집중
수도권 ‘성지’ 의원 한 곳 공급량이 대형병원 174곳보다 많아
정부, 위고비·마운자로 원내 처방 의혹 의료기관 현장조사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바로 수령해서 너무 편리하다”, “꼼꼼 아이스포장 감사하다”
언뜻 보면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식품을 배송받은 이용자의 후기이다. 그러나 실상은 비만 주사제를 처방하는 한 수도권 의원에 대한 후기이다. 이처럼 주사법 교육과 안내 차원을 넘은 주사제 원내 판매는 명백한 약사법 위반이다.
환자가 스스로 투여하도록 개발된 비만·당뇨 자가주사제가 의약분업 원칙을 흔드는 새로운 유통 사각지대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의 비만 치료 자가주사제의 상당수가 약국이 아닌 의료기관에 직접 공급돼 원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약사법 위반으로 보건당국의 관리·감독망을 피해 자가주사제를 편법 유통해 온 의료기관들을 대상으로 고강도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23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수요가 급증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당뇨·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의 유통 경로가 의약분업 원칙과 상충하는 비정상적인 공급 흐름이 포착됐다.
현행 약사법상 자가주사제는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약사의 조제를 거쳐 환자에게 인도되는 것이 원칙이다.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약을 지어 판매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다만 현행법은 환자에게 올바른 주사 방법과 부작용 등을 안내하고 교육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의료기관이 시범적으로 ‘주사제를 주사하는 행위’를 의약분업 예외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의료기관 현장에서는 교육용 예외 조항이 의료기관의 독점적 원내 판매를 위한 면죄부로 악용되고 있다. 이는 유통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위고비는 출시된 2024년 10월부터 2026년 7월까지 약국 외 요양기관(의료기관)에 62%(192만373개), 약국에 38%(117만9849개)가 유통됐다.
마운자로는 출시된 2025년 8월부터 2026년 7월까지 의료기관 등에 56%(1005만5693개), 약국에 44%(795만1428개)가 공급됐다. 의사 처방·약국 구매가 원칙인 의약품이 약국에는 절반도 공급되지 않은 셈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급·의원급으로 분류되는 의료기관 중 의원급의 비중이 위고비 88.2%, 마운자로 92.4%로 압도적이다.
‘비만 치료 성지’로 불리는 수도권의 A 의원은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합산한 의원급 의료기관 공급량에서 1위를 기록했다. 약품별로는 마운자로가 21만9944개로 1위, 위고비가 2만3124개로 2위를 차지했다.
위고비 시판(2024년 10월)과 마운자로 시판(2025년 8월) 이후 2026년 7월까지 두 약을 합쳐 24만개 이상을 공급받았다.
A 의원의 마운자로 공급량은 해당 주사제가 공급된 상급종합병원 20곳과 종합병원 154곳에 공급된 물량을 모두 합친 20만8016개보다 많았다. 이는 의원급 의료기관 1곳당 평균 공급량의 약 344배로, 시판 이후 약 1년간 하루 평균 603개의 마운자로를 공급받은 셈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복지부는 의약분업 원칙이 현장에서 충실히 지켜지도록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자가주사제의 원내 조제와 불법 판매 행위가 의심되는 전국 공급량 상위 의료기관들을 선별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전격적인 관계기관 합동 현장조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교육을 핑계로 주사제를 대량으로 원내 지출하거나 환자에게 직접 판매한 행위가 적발되면 행정처분과 고발 등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물을 방침이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자가주사제는 오남용 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므로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약사의 철저한 조제·복약지도가 필수적”이라며 “의약분업의 근간을 흔들고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편법 유통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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