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프리IPO·IPO 추진 중단 발표
“美 낸드 생산시설 필요”…새 재원 마련 과제
최대 100억달러 공모 대신 증자·차입 가능성
낸드 업황 변동성에 독자 신용등급 확보 관건
직접 지원 땐 투자·주주환원 균형 숙제
<편집자주>
‘칩칩팹팹(Chip Chip Fab Fab)’은 AI 시대를 움직이는 반도체 산업을 쉽고 깊이 있게 풀어내는 연재입니다. AI 혁명의 핵심인 ‘칩(Chip)’과 이를 만드는 ‘팹(Fab)’을 잇는 이름으로,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처럼 반도체 산업의 쉼 없는 진보를 담은 표현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기술은 쉽게, 뉴스 이면의 이야기와 산업의 흐름은 깊이 있게 전하며, AI 시대를 이끄는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를 독자들과 함께 읽어갑니다.
[헤럴드경제=이정완 기자] SK하이닉스가 주주와 정치권 반발로 인해 미국 낸드플래시 손자회사 솔리다임(Solidigm)의 기업공개(IPO)를 철회한다고 지난 23일 공식 밝혔다.
SK하이닉스는 IPO 중단 계획을 알리면서 솔리다임의 미국 내 신규 팹(Fab) 투자 계획을 공식화했다. 인텔 낸드 사업부 시절부터 중국 다롄에만 팹을 보유해 온 솔리다임은 지난달부터 미국 생산기지 투자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솔리다임의 신규 팹 건설엔 조 단위 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솔리다임이 목표한 IPO를 완주했다면 조 단위 자금 유입이 가능했지만 이제 새로운 조달처를 찾아야 한다. 주식을 활용한 시장성 조달은 어려워진 만큼 SK하이닉스가 증자를 통해 지원하거나 솔리다임이 직접 차입에 나서는 방안이 검토될 전망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 23일 솔리다임 IPO와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 검토 중단을 발표하며 솔리다임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밝혔다.
회사 측은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수요 증가는 솔리다임의 새로운 성장 기회”라면서 “기존 생산시설만으론 증가하는 수요 대응에 한계가 있어 미국 내 신규 생산시설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미국 뉴욕주 북부를 신규 낸드 팹 후보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가 유티카에 솔리다임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전해진다.
솔리다임은 그동안 중국 다롄에 낸드 팹을 운영해왔다. 2020년 90억달러(약 10조원)에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으며 확보한 공장이다.
하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인해 낸드 수요 역시 급증하면서 솔리다임이 생산하는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솔리다임은 대용량 쿼드 레벨 셀(QLC) 기술을 기반으로 이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QLC는 하나의 셀에 4비트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으로 단위 면적당 저장 방식을 극대화했다.
특히 미국 내 AI 투자 수요 확대는 물론 현지 반도체 팹 건설 요구가 커짐에 따라 미국 투자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 팹 신설이 중국 첨단 장비 수출 규제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롄 팹 생산능력(CAPA) 확대를 위해 미국 투자를 협상 카드로 활용한단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낸드 팹 신설을 위해선 조 단위 자금 집행이 불가피하다. 최근 SK하이닉스 투자 사례가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시설 건설에 약 40억달러(약 5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웨이퍼에 회로와 메모리 셀을 만드는 공정 전체를 갖춰야 하는 전공정 팹이 후공정 팹 대비 투자 규모가 더 큰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지출이 예상된다.
지난 7월 발표한 청주 낸드 팹 투자 계획을 통해 솔리다임 미국 투자 전망치를 엿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7 건설에 19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10년 만의 신규 낸드 공장인 M17은 내년 착공해 2029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솔리다임이 계획대로 프리 IPO와 IPO까지 마쳤다면 큰 무리 없이 투자 재원을 확보했을 전망이다. 업계에서 추정한 솔리다임의 예상 시가총액은 1000억달러(약 130조원)로 이 중 100억달러(약 13조원)을 공모를 통해 조달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주식자본시장(ECM) 활용이 어려워지면서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차입을 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솔리다임 자체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로부터 아직 신용등급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다.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투자자를 찾기 위해선 ‘BBB-’ 이상 투자적격 등급(Investment Grade)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솔리다임보다 매출·순이익 외형이 더 큰 낸드 기업 키옥시아와 샌디스크 사례를 살펴보면 솔리다임이 곧바로 투자적격 등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샌디스크는 올해 상반기 매출 149억달러(약 20조원), 순이익 105억달러(약 14조원)를 기록했지만 피치와 무디스로부터 각 BB+, Ba1 등급으로 평가 받고 있다. S&P로부턴 BBB 등급을 확보했다.
솔리다임(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설루션 낸드사업)은 지난 상반기 매출 12조원, 순이익 6조원을 기록했다. 반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141%다. 최근 실적 호조세와 별개로 신용평가업계에선 낸드 사업에 집중된 사업 구조와 메모리 업황 사이클 등을 이유로 더욱 보수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부채자본시장(DCM)에서 직접 조달이 어렵다면 모회사인 SK하이닉스가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올해 초 솔리다임 모회사인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설루션’을 AI 컴퍼니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하며 100억달러(약 13조원) 출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설루션에서 솔리다임이 담당하고 있는 낸드 사업만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었다. 기존 법인은 미국 내 AI 생태계에 투자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위해 100억달러를 자금 요청(Capital Call)에 따라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경우 SK하이닉스의 FCF(잉여현금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회사 투자에 집중하다 보니 주주 몫으로 돌아갈 현금이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까지 주주환원정책 기준을 FCF의 50% 이상으로 정해두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솔리다임 IPO를 검토한 배경 중 하나로 현금흐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회사 측은 “IPO를 통해 외부자본을 유치하면 SK하이닉스의 연결 현금흐름이 증가해 시설 투자와 배당 및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여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리 IPO 및 IPO 추진 검토를 중단했지만 여전히 솔리다임의 생산능력 확충과 경쟁력 강화는 중요한 과제”라며 “투자 시기와 규모, 재원조달 방식 등을 검토하며 솔리다임의 성장과 기존 주주들의 이익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jeongwa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