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 대상 727개 세세분류로 정비…유사 업종도 희비 엇갈려
연극단체 포함·무용단체 제외…중기중앙회 “업종 간 형평성 문제” 정부에 건의
가족승계 문턱 높이고 M&A 기업승계 지원 확대…기보 매칭시스템도 가동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 올해로 25년째 잡지 출판사를 운영하는 A씨는 장성한 아들에게 출판사를 물려주려고 계획중이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A씨가 창업한 출판사에 직원으로 들어온지도 벌써 4년이나 됐다. 가업 상속제를 이용하면 세제 혜택을 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올해 정부가 제시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A씨의 출판사는 가업상속 대상이 아니다.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는 가업으로 보지만, 잡지 출판은 가업 상속 대상이 아니어서다.
#2. 어머니가 무용단체를 하는 B씨는 대학 무용과를 졸업했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B씨 역시 나중에 어머니처럼 무용 단체를 경영하거나 어머니의 법인을 물려받을 계획이다. 그러나 B씨 어머니가 운영하는 무용단체는 가업승계 대상이 아니다. 연극단체는 가업상속공제 대편안의 지원대상이지만, 무용이나 공연단체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선 두 사례는 실제 사례는 아니다. 대신 올해 9월 정부가 개편한 세제개편안이 원안대로 국회에서 통과가 될 경우 가업상속 대상이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해당 법인이나 단체의 상속에 따른 세금은 큰 차이를 보일 개연성이 크다.
727개 세세분류… 유사업종 간 ‘희비’ 불보듯
24일 중기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적용할 경우 건물설비 설치 공사업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이지만 전기 및 통신 공사업은 제외된다. 기반조성 및 시설물 축조 관련 전문공사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전문직별 공사업으로 분류되지만 세부 업종에 따라 가업승계 지원 여부가 달라진다.
출판업도 유사하다. 교과서와 만화 등을 만드는 서적 출판업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이지만 신문, 잡지 및 정기간행물 출판업은 제외된다. 방송업에서는 유선·위성 및 기타 방송업이 포함되고 지상파 방송업은 제외됐다.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을 기존의 대분류·중분류 중심에서 세세분류 기준으로 개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을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세세분류 727개로 정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는 상위 산업분류를 기준으로 폭넓게 인정하던 업종을 세세분류 단위로 구분해 공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같은 대분류에 속하더라도 세세분류가 다르면 어떤 기업은 공제 대상이 되고, 다른 기업은 제외되는 일이 발생한다.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에서 연극단체(R90121)와 무용 및 음악단체(R90122), 건물설비 설치 공사업(F422)과 전기 및 통신 공사업(F423)의 취급이 달라지는 이유다.
정부는 전문기술과 경영상 노하우를 보유한 기업에 지원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부는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해 상속세 부담을 회피하는 사례를 막고, 제도 본래의 취지에 맞게 공제 대상을 정비하겠다는 취지다. 마트나 버스·택시 운송업, 주차장업, 창고업, 병원, 약국 등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기술과 노하우의 축적 여부를 업종 구분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 기업 운영에서는 특허나 산업기술뿐 아니라 오랜 거래관계, 시공 경험, 숙련된 인력, 브랜드 가치 등도 중요한 경영자산인데 이를 일률적으로 구분하면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같은 문제점을 담은 의견서를 정부에 전달했다. 중기중앙회는 의견서에서 “동일 대분류 내 유사한 업종 간에도 명확한 기준 없이 대상 여부가 갈리면서 업종 간 형평성의 문제가 야기된다”고 지적했다.
제조업과 건설업을 함께 영위하는 중기의 경우 상황은 더 복잡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리·창호 업계다. 고성능 유리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는 공제 대상에 포함되지만, 유리를 건물에 설치하는 공사업체는 가업상속 공제 대상에서 제외 된다. 유리 제조부터 가공, 설치까지 한 기업에서 담당하는 경우엔 가업상속 공제를 받기가 어려워 진다는 설명이다.
여러 업종에 걸친 사업을 하는 기업의 공제 범위도 달라진다. 현행 제도는 공제 대상인 주업종과 대상이 아닌 부업종을 함께 운영하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전체 사업용 자산에 공제를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개편안은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주업종에 해당하는 부분만 안분해 공제하도록 했다.
이번 개편안은 현재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심사 단계에 있다. 정부안대로 통과되면 2027년 7월 1일 이후 개시되는 상속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정부, ‘가업승계’ 대신 ‘기업승계’에 방점
정부가 가업승계의 요건을 엄격하게 정비키로 한 것은 아들과 딸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가업승계가 ‘부의 대물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왔다는 비판적 인식이 그 배경이다. 대신 정부는 아들·딸 친족 대신 해당 기업의 직원이나 제3자에게 기업을 매각하는 M&A 방식의 기업승계를 큰 정책 방향의 틀로 생각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2월 ‘M&A를 통한 중소기업 승계 활성화 기반조성 방안’을 발표하고 관련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경영권 승계를 원하지 않는 기업이 폐업하지 않고 새로운 경영자에게 사업을 넘길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제조업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비중은 2012년 14.1%에서 2024년 44.8%로 높아졌다. 경영자 고령화로 후계자를 찾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친족승계만으로는 중소기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기술보증기금도 기업승계 지원에 나섰다. 기보는 지난 8월 ‘기업승계 M&A 매칭시스템’을 구축하고 매도·매수 희망 기업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기업승계를 원하는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전문 중개기관을 연결해 거래 진행을 지원하는 구조다. 기보는 인수자금 보증과 기술보호 지원도 연계하고 있다.
기업승계 컨설팅 지원사업도 운영 중이다. 올해 기초컨설팅 100개사, 종합컨설팅 40개사 등 140개사 안팎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기초컨설팅은 매각을 희망하지만 아직 거래 상대방을 찾지 못한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종합컨설팅은 거래 상대방이 있는 기업의 가치평가와 실사, 계약 등을 지원한다.
정부는 제3자 사업승계를 촉진하기 위한 세제 혜택도 신설할 계획이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의 중소·중견기업을 20년 이상 경영한 60세 이상 최대주주가 일정 요건을 갖춘 제3자에게 사업을 양도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20% 감면하는 내용이다. 사업을 인수한 기업에도 5년간 소득세·법인세를 10% 감면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같은 세제 혜택은 2028년부터 적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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