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아그라 맛 토종닭, 곰탕에 빠진 파스타 ‘서교난면방’ [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내가 어디 출신인 게 뭐 그리 중요하오. 맛있으면 됐지.” 음식의 국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제는 음식의 국적이 어딘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나라 전통에 뿌리를 내린채, 새로운 요리가 꽃을 피우는 것이 하나의 미식 문화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이런 변화에 대해 편견이나 거부감을 갖지 말고 오로지 ‘맛’에 집중해야 한다. 음식의 국적에 매몰돼,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따지다간 음식의 본질인 맛을 놓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서교난면방’에서는 한식과 이태리식이 혼재된 새로운 음식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식을 한식으로 재해석했다든가 하는 부류가 아니다. 두 나라의 전통에 기인하지만 국적을 따질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음식의 탄생이다. 어딘가 낯익지만, 한편으로 생소한 맛의 경험은 신비로운 여행지를 방문한 여행자의 설렘을 느끼게 한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서교난면’은 1450년대 작성한 ‘산가요록(山家要
2025.05.18 22:00“비싼 한국빵, 맛 없는 이유”…제빵계 에르메스 출신 셰프의 ‘소신발언’[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한국빵은 비싸고 맛이 없다.’ 한국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다. 맛은 떨어지면서 비싼빵으로 취급받고 있다. 실제 통계적으로 한국빵이 비싼 것이 입증됐다. 맛은 과거에 비해 일취월장한 게 사실이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단과자 반죽으로 만든 푸석한 빵이 많았지만, 세계적인 제빵기술이 유입되면서 이제는 한국빵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빵계 내부에서는 맛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제빵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피에르 에르메 도쿄(Pierre-hermes Tokyo)’ 출신의 방준호 셰프 역시 한국빵 맛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쪽이다. 국내 제빵업계에서 뜨는 신성(新星)인 그가 느낀 일본과 한국 빵 맛의 근본적 차이는 ‘재료’에 기인한다. 다양하고 풍부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일본과 그렇지 못한 한국의 빵맛은 시작부터 너무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2025.05.11 22:07못생겨서 죽어야 하는 운명, 미식으로 다시 태어나다 [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삐뚤어진 나의 얼굴을 마주잡고 그는 말했다. “당신도, 아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어.” 못생겨서 죽어야 하는 운명이 있다. ‘외모지상주의’는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미식의 세계에서 외모지상주의는 더없이 잔인하게 적용되고 있다. 외형이 못나거나, 지나치게 작거나 큰 식재료가 마주칠 운명은 폐기된 삶 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 2019)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농산물이 한 해 13억톤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더러운 외모지상주의’라는 표현이 통용될 만큼, 우리는 외형에 취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지에 대해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아름다운 채소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은 못생긴 채소가 버려지고, 그만큼이나 광활한 토지가 황폐화되고 있다. 농지에서 발생한 비닐 등 온갖 쓰레기는 땅뿐 아니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비닐하우스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태우는 검은 연기는 숨쉴 수 없도록 뿌옇게 하
2025.05.04 21:10“미슐랭에 집착한 적 없다”…미슐랭만 3개, 日 라멘계 ‘슈퍼스타’[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집착의 ‘미로(迷路)’, 미슐랭. 수 많은 셰프가 오늘도 미슐랭에 오르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 길에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미로에 갇힌 것만 같다. 그럴수록 미슐랭에 대한 셰프들의 집착은 커진다. 미슐랭 레스토랑을 탐문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슐랭 가이드가 제안하는 5가지 기준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 등에 맞춰 거액의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슐랭에 도착한 이는 극소수뿐이다. 애당초 주관적이로 추상적인 미슐랭의 기준이 뜬구름 잡는 말은 아닐까. 세계적인 미식의 격전지 도쿄에서 미슐랭 가게만 3개를 운영하는 미슐랭을 만드는 ‘신의 손’ 미즈하라 히로미츠(40·水原裕満) 셰프는 단 한번도 미슐랭에 집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많은 셰프들이 했던 말과 같다. 그에게 미슐랭은 자신의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나아
2025.04.27 21:00“중국에 김치 뺏길 것”…안성재·강민구 스승의 섬뜩한 경고[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절망적 목적지를 모르는 것마냥, 우리는 그곳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심각한 기후 위기로 한국에서 계절이 사라지고 있다. 며칠 전 만개한 벚꽃 위로 차가운 눈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내리고 이틀 뒤에는 낮 기온이 27℃로 치솟았다. 올해 여름은 사상 최고의 폭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폭염은 매년 신기록을 갱신할 것이다. 지독히도 더운 여름이 무려 5개월 이상 이어질 수도 있다.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만이 이어질 뿐이다. 계절의 변화는 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계절감 있는 재료가 강정이라던, 한식의 근간마저 무너지고 있다. 수온의 증가로 한국의 대표 어종인 고등어, 오징어, 명태 등이 급감했다. 봄나물과 배추, 무 등 농작물도 한반도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과거 흔히 먹던 고등어구이, 오징어볶음, 온갖 산나물은 고급 한식집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될지 모른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는 암울한 미
2025.04.20 21:30광례와 물질한 ‘파란 눈의 셰프’…그가 차린 해녀의 밥상 [미담:味談]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일렁이는 청록빛 제주 바다는 어쩌면 해녀들의 눈물은 아닐까. “앞으로 내 밥 여기다 줘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관식은 아내 애순과 어린딸 금명이 있는 밥상에 돌아 앉으며 선포하듯 말한다. 그리고 콩밥 위에 콩을 골라 크게 한 숟갈 금명에게 넘겨준다. 남자 밥상, 여자 밥상이 따로 있던 시절이었다. 남자 밥상에는 조기 구이에 제철 나물들로 거한 한상이 차려졌다. 국에도 건더기가 그득했다. 여자 밥상에는 생선 대가리, 건더기가 보이지 않는 국, 장아찌가 전부였다. 콩알 하나 찾기 힘든 콩밥마저 까맣게 늘러붙은 아랫밥만 긁어 먹어야 했다. 관식의 행동은 그런 낡은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50~1970년대는 그래도 되는 시대였다. 당시 해녀의 밥상에는 지독히도 배고프고 고달팠던 제주 여성들의 삶이 담겨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에 들어가면서, 남자들이 먹다 남은 잔반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그들이었다. 바다
2025.04.13 21:00토니안도 ‘시체냄새’로 신고당했다…청국장 세계화 장담한 ‘미식 외교관’[미담:味談]
미슐랭 돼지곰탕 옥동식의 옥동식 셰프 인터뷰 NYT 선정 뉴욕 미식 8선…“인생 최고의 스프” 한식 세계화 조건은 ‘현지 식재료로 만든 요리’ ‘시원한 맛’ 제7의 맛으로 세계에 인정받고파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엄마 옆집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요!” 가수 토니안이 미국에 살던 어린시절, 그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이 집안을 뒤져 발견한 건 끓고 있던 청국장이었다. 청국장 냄새를 ‘시체 썩은 내’로 오해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해 벌어진 일이었다. 해외에 거주한 한국인 중에는 비슷한 일을 경험한 이들이 많았다. 이런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이 외국인에게는 끔찍한 ‘악식(惡食)’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아가 한식의 세계화는 불가능 하다는 마음의 벽마저 세워졌다. 돼지곰탕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옥동식 셰프는 말한다. 청국장도 세계인이 사랑할 수 있다고.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온전히 해외의 식재료로 만든 청국장이어야 할
2025.04.06 21:00악식 취급당한 ‘한국의 맛’, 미식의 정점에 오르다 [미담:味談]
밍글스 강민구 셰프 인터뷰 미슐랭 3스타…“비결은 장” “한국의 장 ‘조화의 매개체’” “한식을 세계 미식 주류로”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미식의 정점에 오르니, 그곳엔 ‘장(醬)’이 있었다. 악식으로 취급받던 ‘한국의 맛’이 있다. 해외여행 자유가 풀린 1980년대, 한국인 여행객들이 꼭 챙긴 것이 있으니, 바로 ‘장’이었다. 해외 음식에 경험이 부족한 한국인들은 외국에만 가면 쫄쫄 굶기 일쑤였다. 된장, 고추장, 간장은 한국인들에게 생존을 위한 구호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국의 장을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장이 풍기는 냄새와 모양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된장을 똥으로 오해해 신고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한국의 장은 미식과 거리가 먼 존재로 치부됐다. 40년이 흐른 지금, 미식의 세계에서 장의 위치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악식에서 미식으로, 미식에서도 그 정점에 오르기까지. 그 길에는 셰프들의 땀과 눈물이 베어 있고, 중심에는 강민구 셰프가 있다. 그
2025.03.30 21:00“빠른 성공의 비결, ‘거짓’뿐”…천재 셰프가 되버린 반항아 [미담:味談]
미슐랭 2스타 프렌치 파인다이닝 알렌, 서현민 셰프 인터뷰 미식을 찾기 위한 하루 14시간 그렇게 17년…각고의 세월 ‘손님의 머릿속에 계절을 만든다’…계절을 담은 알렌의 미식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지독한 노력으로 ‘천재(天才)’라 불리는 ‘범재(凡才)’가 있다. 그는 프랜치 파인다이닝 ‘알렌’의 서현민 셰프다. 2019년 한국에 혜성처럼 등장해, 1년만에 미슐랭 2스타에 오르고, 2021년 알렌을 오픈해 3년만에 다시 미슐랭 2스타에 오른 그에게 대중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국 최초를 넘어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기록이었다. 사람들은 서현민 셰프를 ‘천재’라 부르는 한편, 그처럼 빠른 성공을 거두기를 바랐다. 서현민 셰프는 그들에게 ‘허상(虛像)’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고 있는 천재 서현민은 없다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능력의 사람일뿐이라고. 뒷단에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각고의 세월이 있었다고. 천재라 부르는 건 그런 그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한다.
2025.03.23 21:00“양념치킨도 한식이다”…‘관념의 틀’ 깬 한식계 이단아 [미담:味談]
미슐랭 1스타 소울의 윤대현·김희은 셰프 인터뷰 “한식, ‘한국의 식문화’를 아우르는 개념 ” “소울, 손님과 ‘공감’ 할 수 있는 공간되기를”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이것은 한식을 가둔 ‘관념의 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린 때론 좁고 단단한 관념의 틀 안에 어떤 대상을 가둬놓곤 한다. 관념의 틀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대상은 정의(定義)를 부정당한다. 존재하지만 정의할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고정관념과 편견을 이토록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스쳐지나칠 짧은 표현으론 단어가 내포한 끔찍한 의미를 우리는 좀처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식을 가둔 관념의 틀은 비좁고 견고하다. 그것은 ‘포지티브 규제’와 같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등 몇몇 음식만을 한식으로 허용한다. 그 외의 것은 한식으로 실격이다. 문화의 뒤섞임으로 수 많은 음식이 태어나고 있지만, 사회는 그것들을 한식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무언가일뿐. 그러다보니 웃지못할 해프닝도 일어난다. 과거 국
2025.03.16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