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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작은 변화조차 머뭇거리는 당신에게'
어느날 조용하고 수줍어 보였던 친구가 원색의 힙스터가 돼 돌아왔다.
"나이 먹고 무슨 바람이 들었길래 그러니. 부모님이 뭐라 안 하시든? 내가 다 걱정돼서 그렇지."
새로운 모습을 응원할 법도 한데, 진심어린 조언이라며 비아냥을 내뱉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가시돋친 말에는 독(纛)이 발라져 있다. 그 독은 금세 듣는 이의 마음에 퍼져, 새로움을 꿈꿨던 설렘을 부끄러움으로 바꿔버린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가 주변의 부정적 시선에 포기해 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유교적이고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변화를 포기한 그들에게 소라빵이 "빵도 하는데 왜 너희가 포기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대격변을 끝마치고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하며 말이다.
소라빵은 조용했던 친구 같다. 단팥빵·크림빵·소보로빵과 같이 옛날빵 주류에는 들지 못하지만, 옛날빵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 소라빵도 있었어!"라고 떠오르게 되는 그런 존재다.
소라빵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소라빵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탄생했다. 일본에서는 소라빵을 '코로네(コロネ)'라고 부른다. 원뿔형 과자를 뜻하는 프랑스 고어인 코로네뜨(coronette)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유럽과 교역을 하면서 오스트리아 과자 샤움룰레(schaumrolle)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한국에는 일제강점기 이후 전파됐다.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된 건 1970년대 초 SPC의 전신인 삼립식품에서 소라빵을 대량생산 하면서부터다. 소라빵은 전국의 빵집과 슈퍼마켓 등으로 팔려나갔다.
붕어빵하면 단팥이듯, 소라빵하면 으레 초코크림을 떠올린다. 이는 일본에서 소라빵이 만들어졌을 초창기부터 자리잡은 형태였다. 7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초코크림을 맛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초코크림 맛을 처음 알려준 게 소라빵이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지만, 단팥빵·크림빵 등의 그늘에 가려있었다.
하늘색 구름소다 소라빵은 무슨 맛일까?
그 후로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소라빵이 여전히 과거의 모습 그대로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존재감이 약했던 만큼, 어떠한 변화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 예상을 비웃듯 소라빵은 그 어떤 빵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소라빵을 연남동의 한 빵집에서 만났다.
오직 소라빵만을 취급하는 이 빵집에는 구름소다·오렌지크림·야끼소바·페퍼로니 등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라빵들이 다양하다.
구름소다 소라빵은 이름처럼 연한 하늘색 크림이 돋보인다. '도대체 무슨 맛일까. 너무 달면 어쩌지.' 걱정도 들 법 하지만 이내 기분좋은 달콤함에 빠지게 만든다. 부드러운 우유크림에 소다향을 살짝 끼얹은 맛을 상상해 보면 될까. '달다'는 표현보다는 '달짝지근하다' 정도가 더 맞는 약간의 단맛이다. 상쾌한 소다맛은 튈 것 같은 단맛도 잡아주는 듯 하다.
오렌지크림은 상큼한 오렌지향과 치즈크림의 조화가 제법 궁합이 맞는다. 구름소다 소라빵보다 더 강한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치즈크림이 들어가서인지 크림의 질감도 제법 묵직하다.
빵은 촉촉한 질감에 버터의 풍미가 터져나온다. 비결을 물어보니 '브리오슈'라는 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의 소라빵에 사용된 빵은 옛날빵에 많이 쓰이던 단과자 반죽이었다면, 이 빵에는 더 많은 버터 등 유지류가 들어간다고 한다.
길은 스스로를 믿는 자만이 나아갈 수 있다
빵집을 운영하는 최수정(30) 씨는 10년차 베테랑 제빵사다. 남편 홍한결(34) 씨도 제과업에만 10년 넘게 몸 담고 있는 파티셰다.
"세상에는 없는 우리만의 빵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소라빵 전문점을 차리게 됐어요. 오직 저희 가게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새로운 소라빵을 선보이고 싶어서요."
그들의 도전을 손가락질 하는 이들도 있었다. "'너희는 망할거야'라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여기저기서 조언을 해줬지만, 사실상 가게 운영에 도움이 되는 조언은 거의 없었어요. 다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며, 새로운 시도를 해선 안 된다는 지적뿐이었지요."
그는 그럴 때마다 '내가 보여줄게'라는 마음으로 버텼다고 한다. 남의 말보다 스스로의 결정과 쌓아온 노력을 믿었다.
그의 바람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새로운 맛에 주저하던 손님들도 맛을 본 뒤 단골이 됐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먼 곳에서도 택배 주문을 할 만큼 인기가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서울의 대형백화점에도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머뭇거리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스스로를 믿으라고. 노력과 목표가 뒷받침 된다면, 성공 가능성은 열릴 거에요. 혹여나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요. 도전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는 과정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삶은 더욱 빛나지 않을까요."
소라빵에는 이들 부부의 삶이 투영돼 있다. 그런 소라빵이 던지는 메시지는 짧지만 큰 울림을 담고 있다. 당신도 포기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