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한 작품이 명성을 얻게 되는 데는 작품성을 넘어선 그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안목이 뛰어난 컬렉터나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는 것은 물론 스캔들, 법적 분쟁, 도난 사건, 심지어 예술계를 뒤흔든 저항까지….
작품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이처럼 다양합니다. 그리고 평판 높은 이런 미술품들은 단 0.1초 차이로 행방이 갈라지게 되죠.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1969년 10월 17일 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
북쪽 기슭에 자리한 이 도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 암흑을 뚫고 산 로렌초 성당에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악명 높은 마피아 조직 ‘코사 노스트라’의 의뢰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도둑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360여 년간 예배당에 걸려 있던 대작을 훔치는 것.
이 그림은 높이 3m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으로, 바로크 미술의 혁명을 이끈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유명을 달리하기 직전에 그린 걸작이었습니다.
작품 제목은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탄생’(Nativity with St. Francis and St. Lawrence)입니다. 화폭에 담긴 장엄한 아름다움은 신과 인간, 빛과 어둠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죠.
그러나 이 작품은 하룻밤 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도난 당시 작품의 가치는 약 65억 원으로 평가됐고, 오늘날에는 약 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인데요. 하지만 그 금액조차 허상일 뿐. 이 걸작은 이후 55년간 단 한 번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존재 여부조차 불확실하고요. 오죽하면 이 미술품 도난사는 FBI가 발표한 ‘10대 예술품 범죄 사건’ 중 하나로 등극하게 됐을까요.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빛
산 로렌초 성당의 보안은 그림의 높은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미흡했습니다. 당시 이 작품은 이미 귀중한 미술품으로 평가받았죠. 그러나 성당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한 유리 보호막이나 경보 장치 같은 기본적인 보안 설비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습니다. 도난범이 그림을 훔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도난 소식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전역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니었거든요.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자, 어둠과 빛의 극적인 대비로 유명한 카라바조의 명작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비극이었습니다. 사건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그림을 훔친 이유와 그 이후 그림의 행방에 있었는데요.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의 배후에 마피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팔레르모는 마피아의 영향력이 깊이 뿌리내린 지역이기 때문이죠. 그림은 비공식 경매를 통해 다른 나라로 밀반출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또 다른 소문은, 그림이 조직 내부에서 권력의 상징으로 보관되었거나 거래 중 훼손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심지어는 마피아간 분쟁 중 그림이 불에 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떠돌았고요.
왜 마피아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탐했는가?
왜 마피아는 카라바조의 이 작품에 집착했을까요. 카라바조는 이 대작에 어떤 메시지를 담으려 했던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예술계의 천재였지만, 그 내면은 혼돈과 격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의 붓은 신성을 찬미했지만, 현실에서의 그는 인간의 어둠을 끊임없이 마주했습니다. 폭력과 불안, 갈등 속에서도 그가 필사적으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불멸의 명성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건데요.
1571년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젊은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진 불안정한 성격과 폭력적인 행태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혼돈으로 점철돼 있는데요.
아마도 그의 내면에 있는 불안이 모든 갈등의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카라바조는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말 그대로 미술계에 혁명을 일으키거든요.
강렬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비를 통해 영혼의 깊이를 드러낸 선두주자가 바로 그입니다. 카라바조의 그림 속 빛은 단순히 밝음을 표현하는 조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성의 목소리였고,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반면 어둠은 불안과 고뇌,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기 두려운 진실을 담고 있었고요.
무엇보다 카라바조는 작품 속 인물들을 이상화된 존재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성화 속 성인들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기에도 남아있는 고결하고 신화적인 모습이 아니라, 지친 몸과 고뇌에 찬 얼굴로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있었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성스러움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고통과 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순간으로 재현됐습니다.
그런 그가 스포츠 경기 도중 라이벌 화가 라누초 토마소니를 살해하고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가 벌인 이 참담한 범죄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서른 셋이었죠. 그는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를 떠돌며 방황했습니다. 그의 도주와 불안정한 삶은 작품에도 반영돼, 한층 더 강렬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담은 그림들을 남기게 됐고요.
특히 말년엔 병마와 고독 속에서 더 깊은 어둠을 품었습니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병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내적 고통 속에서 예술로 자신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말라리아나 폐렴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마피아와의 갈등으로 살해되었다는 설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도난당한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탄생’은 카라바조가 말년에 그린, 그야말로 예술적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화면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고요한 슬픔과 숭고한 기운이 흐르며, 예수를 감싸는 빛은 부드럽고도 강렬합니다. 이 빛은 마치 절망의 심연 속에서 피어난 작은 희망의 불꽃처럼 보이고요.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는 경건히 무릎을 꿇고, 그 빛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장면을 채우는 것은 빛만이 아닙니다. 어둠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고, 그 안에서 빛은 상대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빛납니다. 빛과 어둠의 충돌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카라바조가 평생 탐구했던 구원과 고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드러내는 듯 합니다.
사라진 걸작: 부재의 메시지
그래서 마피아가 이 작품을 탐낸 이유는 단순히 금전적 가치 때문만은 아닐 것만 같습니다. (물론 주효한 이유이긴 하겠지만요.) 카라바조의 생애는 마피아의 세계와 닮아 있습니다. 그는 법을 피해 도망치며 방황했지만, 그 속에서도 불멸의 예술을 남겼거든요. 마피아는 이러한 “추적 속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함”을 자신들과 연결지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 어둠과 빛은 마피아의 이중적 세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세계는 법과 도덕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둠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질서와 규율을 만들어냅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 구원과 죄악, 삶과 죽음을 탐구하는 상징적 작품입니다. 마피아는 그의 그림을 단지 거래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자신들의 권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카라바조의 생애와 예술 세계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만들어내는 그의 독창성과 이를 둘러싼 혼란의 상징이었습니다. 마피아는 그의 작품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았을지도 모르고요. 불법과 폭력, 절망 속에서도 권력의 상징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삶은 카라바조의 그림이 보여주는 빛과 어둠의 대립과 맞닿아 있거든요. 카라바조의 작품이 유난히 마피아 조직의 은닉 수단으로 자주 거론된 그림이라는 점이 이 사실을 방증합니다.
카라바조의 걸작이 사라지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부재조차 강렬한 메시지가 됩니다. 어쩌면 사라진 그림이 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게 아닐까 싶거든요. 우리는 그 그림을 볼 수 없지만, 도난당한 작품이 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죠.
빛은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가?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카라바조의 빛은 여전히 침잠하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