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일본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 진출

김병현 '트리투바' 대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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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국내 초콜릿 업체 '트리투바' 김병현 대표가 초콜릿 원료 카카오빈을 바라보고 있다. [트리투바 제공]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진행시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기업 총수의 말 한 마디에 일본의 한 종합상사 직원은 지난해 7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희 회장님께서 한국의 초콜릿을 꼭 일본에서 팔고 싶어하십니다." 무작정 한국의 작은 초콜릿 회사 '트리투바'를 찾은 이 일본인은 김병현 대표를 만나 대뜸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도 있는데 갑자기 왜 저희 제품을..." 김 대표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렇게 되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혹시라도 사기꾼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들었다.

"저희 회장님께서 우연한 기회에 트리투바 초콜릿을 먹어보시고는 '너무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정도 맛이면 충분히 일본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국내 초콜릿 제조업체 '트리투바'의 일본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 진출 성공기다. 대기업도 시도하지 못한 트리투바의 일본 진출은 이처럼 뜻밖의 '행운'에서 시작됐다.

일본은 미국·유럽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초콜릿을 소비하는 나라다. 시장 규모만 약 5조원으로 한국의 5배에 달한다. 특히, 프리미엄 수제 초콜릿으로는 초콜릿 본토인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초콜릿 강국이다. 일본 전역에 수천 여개의 소규모 초콜릿 회사가 있다. 이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방법으로 프리미엄 초콜릿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초콜릿 불모지다. 대부분의 초콜릿은 공장에서 대규모로 찍어내는 양산형 제품이다. 프리미엄 초콜릿은 해외 수입에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다. 마른 땅에도 꽃이 피듯, 그렇기에 트리투바의 도전은 국내 초콜릿 업계에 새 이정표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김병현 트리투바 대표를 남양주 트리투바 본사에서 지난 8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 진출 스토리를 재구성했다.

"스고이!"…까다로운 일본인, 왜 한국 초콜릿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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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내 트리투바 팝업스토어 [트리투바 제공]

'너무 맛있다'

'그게 이유의 전부라고?' 김 대표는 다소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이미 중국, 홍콩 등 중화권에 수출을 하고 있긴 했지만, 디저트 초강국인 일본시장 진출 기회가 이런 이유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좋습니다. 한번 해봅시다." 김 대표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의 말이 진짜라면, 언젠가는 꼭 한번 도전해보고픈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김 대표의 승부사 기질도 한몫했다.

이후 과정은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됐다. 두 달 후 9월 도쿄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트리투바의 제품을 선보였다. 한국의 생소한 초콜릿에 머뭇거리던 것도 잠시, 맛을 본 일본인들은 트리투바 초콜릿을 찾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 2000만원 어치의 제품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4차례 수출을 더 진행했고, 모두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지난해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시회 트리투바 초콜릿 부스에 현지인들이 몰려 초콜릿을 구매하고 있다. [트리투바 제공]

"왜 유럽이 아닌 저희 제품을 선택하신건가요." 트리투바를 선택한 마사무라 회장을 만난 김 대표가 물었다.

"정말 맛있다는 게 이유였네.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저평가하지. 그런데, 일본에서도 이렇게 예쁜 디자인에 이 정도 맛을 내는 제품을 찾기란 쉽지 않거든. 그래서 선택했지." 마사무라 회장의 얼굴에는 확신이 있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김 대표는 더 큰 목표가 생겼다. 올해 안에는 일본의 오모테산도에 트리투바 직영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그리고 향후에는 유럽시장에까지 트리투바의 초콜릿으로 도전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초콜릿에서 '꽃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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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투바의 초콜릿 '사랄미' [트리투바 제공]

"한번 먹어 보시죠. 여태까지 먹었던 초콜릿과는 다를 겁니다."

지난 8일 경기도 남양주 트리투바에서 만난 김 대표는 기자에게 트리투바 초콜릿 몇 개를 건넸다. 꽃 모양의 초콜릿을 입에 넣는 순간 그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금세 깨달았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다.

입 안으로 퍼지는 꽃향기, 씁쓸함 바로 뒤에 오는 견과류같은 고소한 맛, 그리고나서 찾아오는 과일의 산미에 달콤함까지. 여태껏 먹었던 초콜릿과는 아예 다른 고급 디저트로 느껴질 정도였다.

"과일향 같은 것을 첨가한 건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대표는 "아니요. 카카오와 설탕, 우유가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니 비결이 궁금했다.

"카카오도 과일입니다. 초콜릿은 카카오를 발효하고 로스팅해 만든 거죠. 과일향과 산뜻한 산미도 그래서 느낄 수 있는거죠." 김 대표가 설명했다.

우리가 평소 마트에서 사 먹던 초콜릿은 대규모로 생산을 하다보니 코코아 관리에 섬세하게 신경을 쓰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첨가물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 코코아 본연의 맛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일본 진출의 키가 됐던 '살라미' 초콜릿도 먹었다. 초콜릿과 견과류 말린 과일 등을 뭉쳐 '살라미 소시지' 모양으로 만든 이 초콜릿은 식감부터 재미있다. 바스라지듯 부서지면 그 안에 있던 재료들이 저마다 맛을 내며 조화를 이룬다.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트리투바의 초콜릿으로 만든 핫초코를 곁들였다. 이 역시 다양한 향과 맛이 입안을 메웠다. 공장에서 찍어낸 맛에 익숙해진 기자에게 약간의 사치로 느껴질 만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김병현 트리투바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에콰도르 커피농장에서 농장 직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트리투바 제공]

"맛잇는 초콜릿의 비결은 딱 하나에요. '좋은 원재료' 맛있는 카카오만 있다면, 이미 절반 이상은 성공인거죠." 김 대표가 밝힌 트리투바 초콜릿 맛의 비결이다.

좋은 카카오를 찾기 위해 에콰도르,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유명 산지를 직접 찾아갔다. 카카오를 먹어보고 농장주를 만나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하나하나 다 파악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에콰도르다. 대규모 농장에 체계적인 카카오 관리 무엇보다 향과 맛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트리투바 초콜릿 생산 과정 [트리투바 제공]

맛있는 초콜릿은 좋은 카카오를 구한 걸로 끝나지 않는다. 적절한 발효와 로스팅을 거쳐 카카오닙스를 뽑아낸 후 수분과 산을 제거하는 '콘칭' 등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이 굉장히 섬세하다.

김 대표는 기자를 초콜릿 제조시설로 안내했다. 그곳은 꼭 신생아실 같았다. 유리 벽으로 둘러쌓여진 시설은 적절한 습도와 일정한 온도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모든 직원들이 하얀 가운과 모자,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기를 다루듯 섬세하게 초콜릿을 다루고 있었다.

"언제 수입한 카카오인지, 또 언제 수확 시즌과 배를 타고 오는 기간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발효와 로스팅 콘칭 그리고 제조시설의 습도와 온도를 모두 다 다르게 해야 합니다. 조금만 삐끗해도 초콜릿의 맛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한국 초콜릿에 한국만의 '스토리'를 담는다

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트리투바의 초콜릿 제품들. [트리투바 제공]

한국에서도 프리미엄 초콜릿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0년 전만하더라도 프리미엄 초콜릿은 극히 일부만 즐기는 음식이었다. 맛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급격히 커지면서, 이제는 그 관심이 디저트로 넘어와 초콜릿에 대한 일반 대중의 호기심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에 블랙커피는 그저 '쓴물'에 불과했지만, 이제 한국인들의 커피 문화는 선진국에 못지 않게 많이 올라왔습니다. 다양한 원두와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일반인들도 즐기고 있죠. 초콜릿도 그런 변화의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한국 초콜릿시장에 긍정적 변화가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15년 전 배우 이병헌 매니저 시절 김병현 대표 [김병현 대표 제공]

이처럼 지금은 국내 초콜릿시장에서 나름 잔뼈가 굵은 베테랑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김 대표가 어릴 적부터 초콜릿 사업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초콜릿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는 초콜릿 사업을 하기 전 4년 동안 배우 이병헌의 매니저로 동고동락을 같이했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달콤한인생' 등 이병헌 배우가 그의 대표작을 만들 동안 김 대표가 곁에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떠나 초콜릿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다. 1세대 쇼콜라티에였던 아내의 영향으로 진짜 맛있는 초콜릿을 먹어보고, 신혼여행으로 카카오 산지인 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섬을 갔다온 후 신세계를 느꼈다. 많은 한국인에게 이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또한, 사업적으로도 분명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배우 이병헌 매니저→초콜릿메이커 된 '이 남자'…달콤하게 日열도 녹였다[채상우의 미담:味談]
트리투바 초콜릿. [트리투바 제공]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 김 대표는 한국 초콜릿에 '스토리'를 입혀 주고자 한다고 했다. 스토리는 디자인에 달렸다. 꽃을 닮은 초콜릿, 편지지를 닮은 패키지 등을 제작하는 게 그 이유다. 이를 위해 디자인팀을 따로 두고 제품 개발을 할 때 항상 힘을 실어주고 있다.

"초콜릿은 식품을 넘어 '선물'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물에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만의 스토리를 담아야 하죠. 맛을 넘어 스토리로 감동을 주는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