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로 경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노동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은 이제 우리 기업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근속연수 등 연공이 임금결정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연공형 임금체계로는 60세 정년 의무화와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년 60세 안착을 넘어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용 창출 및 근로자 개개인의 발전을 위해 연공중심의 속인적 임금체계를 하루빨리 직무ㆍ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 대타협 등 최근의 사회적 대화 역시 현행 연공급 임금체계를 바꾸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사회저변에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유사한 노동시장 환경을 가진 일본의 선행경험을 새롭게 조명해 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아직도 대부분의 일본기업이 우리와 유사한 연공형 임금체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일본의 연공형 임금체계는 우리처럼 매년 일률적으로 호봉이 상승하는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오래전부터 과도한 연공성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여 상당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통계마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최근(2015년 7월) 일본의 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연령급과 근속급을 적용하는 비중이 평사원은 39%, 관리직은 18%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1950년대부터 서구식 직무급을 도입하려는 실험이 있었고, 이후 직능급을 운영하면서도 연공서열적으로 운영되는 등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2000년 무렵부터는 역할급이라는 일본 고유의 임금체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역할급제란 직무능력에 따른 역할 부여와 해당 역할 수행을 통해 거둔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화 하는 제도이다. 이는 서구의 직무급이 갖는 개인주의 경향을 역할 혹은 책임의 구현이라는 일본의 조직주의로 포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역할급제의 특징은 개인의 역할등급이 강등하면 임금도 함께 하락한다는 점에서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없앴다는 점이다.
또한 임금수준이 높은 관리자급의 장년근로자들은 역할 수행에 대한 업적평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므로, 우리나라와 같은 과도한 임금연공성과 생산성 간 임금의 괴리에 따른 기업 부담이 훨씬 덜하다.
산업계에서는 지난 5월 일본의 임금체계 변화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위해 연수단을 구성해서 일본에 다녀온 바 있다. 현지에서 본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은 일과 능력에 따른 보상을 원칙으로 하면서 직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임금체계를 적용해 가고 있었다.
또한 연수단의 보고서에는 일본의 능력ㆍ역할ㆍ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에 대한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기본 입장이 정리되어 있었다. “평가의 기준과 평가결과의 반영 정도에 대해서만 입장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개인이 수행하고 있는 일과 역할을 평가하여 임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사의 추구 방향이 다르지 않다.”
여전히 일본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정년 60세 의무화 등 제도전환기에 있는 우리나라는 지배적 임금체계인 연공급 비중을 대폭 낮추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고도 성장기의 제조업 근로자 보호를 기반으로 형성된 노동법ㆍ제도를 재정비함으로써 오늘날 산업구조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합리적 인력운영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임금체계 개편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기업과 근로자 역시 일의 가치에 중점을 두면서 개인과 기업의 성과를 합리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임금체계로의 전환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