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리는 실적 싸움…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실적이 매출, 매출이 곧 내 연봉 접대 요구하면 한밤중에도 달려가고 반품된 물건은 고스란히 내 주머니에 정당하게 경쟁하는 영업맨 꿈꿨지만…
지난 2011년 국내 유명 제약회사에 다니던 A(31) 씨. 의약품 판매영업직으로 입사해 1년이 갓 지난 A 씨는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다. 어려운 취업 시장을 뚫고 취직에 성공했을 당시만 해도 좋은 약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세일즈맨으로서 빛나는 모습을 꿈꿨지만, 현실은 약을 파는 기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A 씨에게 매주 월요일 아침은 가장 힘든 순간이다. 지난주의 실적을 결산하고, 그 주의 목표 실적을 발표하는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팀별ㆍ개인별 실적이 공개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목표 실적을 할당받을 때마다 A 씨는 이번 한 주도 어떻게든 실적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견딜 수 없었다.
영업 현장은 더욱 치열했다. 약국 판매영업을 하던 A 씨는 정가에 약을 넘기라는 회사와, 조금이라도 싼값에 약을 받으려는 약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줄에서 떨어지는 순간, 실적 하락이라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냉혹한 현실에서 A 씨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본인의 돈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약을 넘기는 것이었다.
정가 1만원의 약을 20~30% 할인된 가격에 넘기면 발생하는 차액은 고스란히 A 씨의 부담이었다.
그나마 판매한 약품의 결제대금을 한 번에 받을 수도 없었다. 약국들은 자신의 사정에 따라 3~6개월씩 대금을 끊어서 지불했고 A 씨는 마치 일수꾼처럼 약국을 돌며 대금을 구걸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통 기한이 지나 반품을 해야 하는 약이 생기면 A 씨는 자신의 집에 쌓아뒀다. 원칙상으로는 회사에 보고한 후 반품 처리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반품된 약은 고스란히 A 씨의 실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결국 A 씨는 반품된 약을 도매상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도매가는 당연히 약품 출고 정가보다 낮았고, 이 또한 A 씨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4000만원대의 높은 신입 연봉을 받았지만 이런 식의 가격 할인과 반품 처리비용 등으로 A 씨가 지출한 금액만 1년에 1000만원이 넘었다.
좋은 거래처를 확보하면 생기는 높은 실적과 고액의 수당은 모두 팀 내 선배들의 몫이었다.
선배들은 “참고 견디면 언젠가 너도 좋은 거래처를 맡아 폼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결국 A 씨는 지난 2011년 11월 자신의 자취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 씨의 집에는 2000만원어치의 약품 상자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실적에 따라 울고 웃는 영업사원들.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영업직 사원은 실적, 그 하나만을 보고 밤낮없이 뛰어다닌다.
실적이 곧 매출이고, 매출이 곧 자신의 연봉이 되는 구조 속에서 그들은 실적의 압박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최근 문제가 된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도 ‘실적 우선주의’가 불러온 부조리극이다.
현장에서 만난 영업사원들은 회사의 과도한 실적 압박과 영업 현장의 잘못된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 영업사원인 B(33) 씨는 “매주 반복되는 실적 쪼개기가 근절되지 않는 한 영업 압박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회의에서 팀장이 위에서 받은 영업할당량을 가져오면 팀장 이하 전 팀원이 할당량을 나눠갖는, 이른바 ‘쪼개기’가 벌어진다. 이로 인해 어떻게든 채워야 하는 할당량이 생기고, 팀장에 따라 과도한 목표치를 가져오는 경우 이를 채우기 위한 압박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B 씨는 “말도 안 되는 할당량을 받을 때면 못 해먹겠다는 말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지만 욕먹기 싫어 어떻게든 채운다”며 “이 과정에서 거래처 접대는 물론, 리베이트 보장 등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할 돈이 늘어 실적 상승으로 인한 보상보다 개인 지출이 더 큰 경우가 생긴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영업사원들이 실적에 목숨 거는 구조에서 좋은 거래처 확보는 곧 전쟁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C(32) 씨는 “대형 약국 등 이른바 돈 되는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한다”며 “한밤중에도 약국 측에서 접대를 요구하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것은 물론, 거래처의 경조사를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마치 가족이나 된 것 같은 착각도 느낀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좋은 거래처가 한정돼 있다 보니 이를 뺏고 뺏는 일도 부지기수다.
제조업체 영업직에 종사하는 D(35) 씨는 “대형 마트 본사의 MD(상품기획자)는 그야말로 갑 중 갑”이라며 “MD의 눈에 들어야 마트 입점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업체가 MD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D 씨는 “모 마트 MD와 술집을 갔는데 잠깐 다녀오겠다던 MD가 옆방에서 경쟁 업체 사람과 만나고 있던 적도 있었다”며 “이 바닥은 전쟁터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직을 하면서 거래처를 그대로 끌고 가는 사람과 이를 지키기 위한 전 직장 간의 다툼도 발생한다. B 씨는 “우량 거래처가 한순간에 더는 우리 회사 제품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말해 알고 보니 경쟁 업체로 이직한 선배가 자신의 거래처를 그대로 가져간 적이 있었다”며 “선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심하게 다투고 더는 연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B 씨는 “영업사원이라고 하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에, 돈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하루하루 실적 압박 속에 살아가는 고단한 세일즈맨”이라며 “부조리한 영업 관행과 살인적인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정당한 세일즈로 경쟁하는 영업맨이 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서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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